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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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 예찬

2022-02-10 (목) 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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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조금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무엇에 끌렸는지는 모르지만 도자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공방을 찾아갔다. 살짝 언덕 진 곳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옛 학교 교정에 따스하게 내리쬐던 시간 속 햇살향을 소환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에 공방이 있다.

요즘 물레는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이 발로 물레를 돌리지 않고 자동페달을 밟아 속도를 조절한다. 한껏 몸을 움츠려 온 몸을 하나로 붙이고 오직 찰흙이 온전히 중심에 서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초보에게 가장 어려운 작업. 삶에서도 중심을 잡고 순간순간마다 중심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마치 삶을 그려내 듯 처음부터 중심을 잡으라 한다. 그렇게 중심을 잡고 나면 양 손바닥에 힘을 주어 자유자재로 찰흙이 위로 올라가 탑이 되게 했다가 다시 눌러 납작하게 하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의 인생에도 오르고 내림이 있듯이 이 과정 또한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면서 찰흙은 점점 도예가의 손길에 길들여져간다. 마치 도예가의 손과 찰흙이 하나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후 도예가는 자신의 계획대로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 이 모양이라는 것이 천 개를 만들면 비슷해 보여도 모두 천가지의 얼굴이 나온다. 이 또한 매력이다. 한 사람도 같은 얼굴과 같은 생김새가 없듯이 말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약간의 건조과정을 거쳐 모양을 다듬는다. 조각칼과 다양한 도구를 써서 도예가의 의중대로 모양을 수정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는 정제의 과정. 난 이 과정을 잘 못한다. 이 과정에서 너무 오랫동안 깎아내다보면 그릇의 바닥에 구멍이 나 실패하기도 하고 중심을 잘못 놓고 깎다 보면 모양이 비뚤어져 버려지게 된다. 아무리 앞 과정을 잘한다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것들은 초벌로 구워지게 되는데 그야말로 불샤워를 하러 가는 셈이다. 이 과정까지 끝내면 보기엔 좀 그럴싸하지만 단단하지도 매끄럽지도, 쓸모있지도 않은 모양만 도자기 상태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겉모양은 이미 어른 같아 보여도 아직 익지 않아서 무르고 어설프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젊은 시절같이 말이다.

이제 초벌한 것들을 유약을 발라준다. 백색유약을 바르면 백자가 될 것이고 청색을 바르면 청자가 될 것이다. 도자기의 정체성이 될 색이 이때 입혀진다. 이름이 생기는 순간이다. 유약을 입고 엄청난 온도에서 견디고 견뎌낸 인고를 이겨낸 도자기들이 불가마에서 나오는 순간은 정말 경이롭다. 마치 삶을 이루어 낸 듯한 느낌.

하나의 쓸모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이러한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얼마나 더디고 먼 여정일까? 인생을 닮은 이 작업이 경이롭고 즐겁다. 다음엔 뭘 만들어 볼까? 기대에 찬 눈으로 그려 본다.

<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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