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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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의식의 저편에 서 있는 사람

2022-02-04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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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은 나를 벨이라고 부른다. 벨을 찾는다며 가보라 하여 처음 Mrs. B를 만났다. 분명 나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긴 금발 머리를 올린 82세 할머니. 중증 치매에 일몰 증후군이라고 하는 해질녘이면 불안해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이상 증상을 보이는 환자이다.

“Bell I am sorry! Bell I am sorry, I am so sorry! I love you!” B는 눈만 뜨면 벨을 찾았다. 컨트리 뮤직의 가사를 따라 부르고, 일상생활은 가능했지만, 그녀의 언어는 벨에 관한 극히 제한된 것뿐이었고, 벨을 찾는 처량한 울음은 약으로 재워야만 끝이 났다. “Sorry, I am so sooorry!” 행동에 큰 장애가 없이 오직 한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증상을 가진 가엾은 B는 몸은 사그라드는 불쏘시개 같았으나 울부짖음은 심해갔다.

두 딸은 망상이라며 난감해 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마이클이고, 5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로부터 한 번도 벨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B의 옛 친구로부터 벨은 망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까맣게 잊힌 풋사랑이라고 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의 도입부가 생각났다. 주부로서 평생 한 남편의 아내로 살아온 어머니의 임종 후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시간 위를 지나며, 뇌에 새겨진 기억은 살아온 분량에 비하면 많지 않다. 감정이 동반된 순간만 저장되어 있다 회상되어지니. 한 여인이 걸어야 하는 바른 길대로 충실히 살아온 B에게 벨은, 이성으로 억압하며 잘 단속한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사랑의 약속을 저버린 여자의 울음, 약속을 지킬 수는 없었어도, 잊지 않았다는 맹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자책을 보았다. 한 번의 선택으로 정해진 일생을 살았지만, 의식이 희미해지자 사랑의 빚이나 배신에 대한 죄책감은 마치 용암이 폭발하듯 솟구친 것일지 몰랐다. 때론 마취 후에 때론 수면 내시경 후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의식의 저편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내가 잘 못 해 준, 내가 마음으로 빚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촛불의 마지막 다 타고 남은 끌텅으로라도 사랑의 빚을 지불했던 B는 잘 정돈된 각이 선 병상을 비워놓고 벨에게 간 것 같다. 아마 소쩍새가 붉디붉은 피를 토하며 밤새 울었을 것이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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