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은 왔다가 가지만 연방대법은 영원하다.” -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한 말이다. 태프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과 연방대법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니 그의 말은 상당한 경험들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자진사퇴하지 않는 한 누구도 물러나게 할 수 없는 특별한 자리이다. 그와 관련해 태프트에게도 좀 언짢은 사건이 있었다. 1909년 대통령 취임식 중 당시 대법원장이 너무 연로해 취임선서를 망쳐버렸다. 공직수행이 어려울 정도로 노쇠한 대법관을 물러나게 하고 싶었겠지만 이는 대통령이 어찌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 1년 후 노 법관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지난 주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이 은퇴의사를 밝히면서 대법관 지명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94년 클린턴행정부 시절 대법관이 된 그는 이번 회기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반가운 소식에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말까지 흑인여성을 후임으로 지명하겠다고 화답했다.
83세 브라이어의 은퇴발표는 바이든에게 반짝 쇄신의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새해 첫 과업으로 추진했던 투표권법 제정이 상원 공화당의 반대로 실패한 후 바이든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보진영의 실망감과 좌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흑인여성 지명’ 공표는 분위기를 일신했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흑인사회 등 바이든 핵심지지층을 다시 결속시키고 있다. 브라이어의 결정은 바이든에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대법관 종신제는 사법부의 독립을 돕는 장치로 평가되어 왔다. 법관들이 임기나 외부 압력으로 밀려날 일 없으니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불편부당하게 소신껏 일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연방대법이 정치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지명부터 상원 인준의 전 과정은 치열하게 당파적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강조한대로 “오바마 판사,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 클린턴 판사, 그런 건 없”어야 하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가 않다. 낙태, 총기규제, 노조, 기업규제, 투표권 등 대중적 관심이 높고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케이스일수록 법관들은 정치성향에 따라 확연히 갈라진다. 어느 대통령이 지명했느냐를 보면 법관의 성향이 드러난다. 그런 성향을 기초로 대법관이 수십년 미국인들의 일상생활과 정치지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니 대통령들은 대법관 지명기회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바이든으로서는 이번이 대법관 지명 첫 번째 기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 대법관들이 대부분 젊은 데다 올해 중간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이때 용퇴함으로써 진보성향 젊은 법관에게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브라이어는 진보진영의 박수를 받고 있다. 때를 잘 맞췄다는 칭찬이다. 11월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이 상원다수당이 되면 진보이념의 대법관 탄생은 한 동안 물 건너 갈 수가 있다.
사실 브라이어는 오마바 행정부 때부터 용퇴를 종용받았다. 친불 인사인 그에게 프랑스 대사직 제안이 있었다. 2013년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오바마는 연방대법의 앞날을 생각했다. 자신이 대통령이고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인 그때 진보성향 대법관을 새로 임명함으로써 대법에서 오래 진보적 가치가 존속되도록 해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사퇴해야 하는 데 진보성향 최고령 법관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리고 브라이어였다. 그해 여름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긴즈버그와 조용한 오찬자리를 가졌다. 은퇴를 권유하고 싶은 속내였다.
당시 80세의 긴즈버그는 두 번이나 암 투병을 거친 만큼 은퇴하고 쉬어도 좋을 조건이었다. 하지만 종신직 대법관에게 은퇴권유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안,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 오바마는 2014년 중간선거 전망이 밝지 않다, 민주당이 상원 주도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되면 젊은 대법관 지명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암시였다.
명석한 긴즈버그가 대통령의 의중을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대법관으로 계속 남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자리를 떴다. 2010년 남편 사별 후 그는 일에 온 정열을 쏟으며 진보 아이콘으로서의 대법관 역할을 몹시도 좋아했다.
그리고는 2020년 9월 사망했다. 극우 트럼프 세상이 된 후였다. 트럼프는 골수 보수인 에이미 코니 배럿을 지명했다. 이념적으로 정반대인 후임이 들어서서 자신이 그렇게도 중시했던 여성의 낙태권, 어퍼머티브 액션 등을 뒤집는 모습을 본다면 긴즈버그는 어떤 심정일까.
소신 있는 대법관으로 죽는 날까지 헌신하는 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연방대법의 자리는 불과 9석, 용퇴시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신념을 이어받을 젊은 세대가 들어설 수 있도록 때를 보고 물러나는 정치적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60년대 민권운동가로 진보의 기수였던 더굿 마샬 대법관도 용퇴의 때를 계산하지 않았다. 1992년 대선 끝날 때까지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전 해에 은퇴했다.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보수 중의 보수인 클레어런스 토마스를 지명했다. 마샬의 이념적 유산은 전승되지 않았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갈 때 뒷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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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