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산스크리트어를 포함하는 인도-유럽어는 전 세계 가장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15세기 이후에는 서구 열강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해서 그렇게 됐다지만 그전에는 어떻게 영국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퍼지게 됐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또 인류가 처음으로 야생마를 길들인 곳이기도 하다. 원 인도-유럽어를 말하는 기마 민족이 빠른 속도로 주변 부족을 정복하며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집대성한 것이 2007년 출간된 ‘말, 바퀴, 그리고 언어: 어떻게 청동기 시대 유라시아 스텝은 현대 세계를 만들었나’라는 책이다. 데이빗 앤소니가 쓴 이 책은 2010년 미 고고학회가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는데 최근에 나온 DNA 조사 결과는 이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인류 문명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우크라이나 일대는 기원 10세기 경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스웨덴에서 온 바이킹의 후손인 블라디미르 대공이 자신의 출신지인 노브고로드를 장악한 후 키에프까지 세력을 넓혀 이곳을 수도로 삼고 ‘키에프 루스’ 시대를 연 것이다. 루스는 이 바이킹 족의 이름으로 ‘러시아’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블라디미르가 서기 988년 동방 정교를 받아들이면서 키에프는 동쪽 슬라브 족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힌다.
한 동안 잘 나가던 키에프는 13세기 중반 몽골 족의 침입으로 몰락하고 그 후 동 슬라브 역사의 주도권은 몽골과 이들의 후손인 타타르를 물리치는데 앞장선 모스크바로 넘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포함하는 동 슬라브 족의 역사가 키에프와 함께 시작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북동부에는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행보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같은 슬라브 민족이지만 러시아보다 작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핍박과 착취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930년대의 스탈린에 의한 대량 학살이다. 스탈린은 공산당의 집단 농장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말살하기 위해 식량 배급 중단을 강행,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의 13%에 달하는 400만 명이 아사했다.
최근 들어서도 러시아의 횡포는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친 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국민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자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합병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일대까지 점령한 상태다.
푸틴이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넘보는 것은 그것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15개 공화국을 거느리고 호령하던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중에서도 러시아와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고 전략적 가치가 큰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고 싶어한다.
푸틴은 푸틴대로 과거 소련 영토였던 나라들을 침공해 ‘재미를 좀 본’ 경험이 있다. 1999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옐친이 푸틴을 총리로 임명하자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자비하게 체첸 반군을 진압해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한 일이다. 2000년 그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 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체첸 테러리스트들이 모스크바 국립극장에서 850여명을 인질로 잡자 푸틴은 진압 작전을 벌여 이들을 소탕했다. 이 과정에서 120여명의 러시아 인이 희생됐다. 2008년에는 친러 성향의 남오세시야 독립을 저지하려는 조지아를 쳐들어가 항복을 받았고 2014년에는 무력으로 크림 반도를 점령한 후 합병했는데 그 때마다 그의 인기는 올랐다. 경제난과 코로나 사태, 부정부패와 장기 집권으로 국민들이 집권 세력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지금 우크라이나 도박은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할 법 하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깊고 인구 4,00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탱크와 비행기 숫자 등 통상적인 전력 기준으로 보면 러시아가 압도적 우세지만 서방이 제공한 첨단 장비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인들이 게릴라 전을 편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스팅어 미사일을 갖춘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우습게 보고 쳐들어 갔다 코피 터지게 맞고 철군한 후 소련이 망한 것이 기억에 새롭다. 과연 푸틴은 과거의 재미에 도취해 침공을 감행할 것인가, 아니면 서방과 적당히 타협하고 넘길 것인가. 세계는 지금 우크라이나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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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