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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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잊어야만 사는 길

2022-01-28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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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를 받고 싶었다. 한 사람을 미워해도 되고, 속이 시원하도록 할 말을 다 토해내고,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죽어도 되는, 면죄부를 받고 싶었었다.

세 자매의 사이는 살가웠었다. 꽃다운, 삼십 대가 아닌 삼십 살에 남편을 잃은 동생은 미간에 깊이 팬 주름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아픔의 정도를 알게 하였다. 마성의 권력 같은 잔인한 돈의 행패에 휘둘려, 없이 사는 모습이 기침 나오듯 어디서도 묻어 나왔다.

아예, 멱을 따듯이 폐어류 파동에 견뎌내지 못하고 은행으로 받은 차압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어머니는 맨날 된장만 퍼 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고, 동생은 한동안 발을 끊었다. 그러다가 덜컥 유방암에 위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보험금으로 3,500만 원을 받았고, 아이 급식비를 밀리고도 그건 꼭 유지했노라고 했다. 암이라는 무서운 사형 선고에도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병의 경과를 묻던 중에 동생은 흐느껴 울었고, 그건 창자 저 깊은 곳에서 차고 올라오는 울음이었다.


큰언니가 예전에 줬던 돈과 빌린 것까지 3,500만 원을 달라고 하여 속상해 그냥 다 부쳤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남길 게 없다고 했다. 얼마되지 않아 항암요법을 한다며 걸어서 입원하였던 동생은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심정지가 와 그대로 가 버렸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받아야 할 최소한의 위로와 애정도 받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받은 매정함만 담고 가 버렸다. 원통함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럼 내 자식이 학원 임대료를 못 내서 나 앉게 생겼는데, 왜 내 돈 못 받냐? 누구라도 내 자식이 먼저지.” 우리 모두에게 자식은 언제나 어떤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도 최우선이고, 내 돈은 어느 환경에 있거나 다 내 것인가!

여유가 있어 빌려준 돈의 가치와 죽음을 담보로 받은 돈의 가치는 엄청 다를 것 같다. 그 처절한 생명의 값 앞에 떳떳한 내 돈 전부를 받아간 사람에게 용서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증오는 나를 향했고, 심장에 이상이 오면서 울렁증이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 많이 아픈 후에야 겨우 매듭지을 수 있었다. 정작 나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은 “다 잊어버려야 모두가 사는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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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벨라씨는 현직 간호사(RN,CRRN,CRNI)이다. 목포 가톨릭 대학교와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05년 도미했다. 현재 버클리문학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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