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참가자가 있는 경우에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리그와 토너먼트가 바로 그것이다. 리그는 참가자가 다른 모든 참가자와 승패를 가린 후 가장 많이 이긴 참가자가 최종 우승자가 되는 운영방식이다. 토너먼트는 참가자를 둘씩 짝지어 승패를 가린 후 승자끼리 모여 다시 승패를 가리는 것을 계속하여 최후의 두 승자가 승부를 가려 최종 우승자를 정하는 운영방식이다. 그런데 토너먼트 대진표를 살펴보면 우리와 미국은 다르게 만든다.
우리는 토너먼트 대진표를 만들 때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만든다. 모든 참가자를 맨 밑에 가로로 배열한 후, 바로 옆에 있는 경쟁자와 승패를 가린 후 이긴 참가자가 한 칸 위로 진출하여 곁에서 승패를 가려 이긴 다른 승자와 새로운 승패를 다투는 모양으로 표를 만든다. 맨 밑에서 출발해서 이기고 또 이긴 참가자 둘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최후의 격돌을 하는 모양이 되기에 결승전을 대진표의 가장 위에 두게 된다.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용이 되기 위해 등용문 앞에 선 물고기를 생각나게 하는 대진표이다.
그러나 미국식 토너먼트 대진표는 좌우에서 중앙으로 진행된다. 즉 모든 참가자를 오른쪽 끝과 왼쪽 끝에 나누어 세로로 배열한 후 곁에 있는 경쟁자와 승부를 벌여 승자가 한 칸씩 중앙으로 진출한다.
그러다 보니 결승전은 오른쪽의 최강자와 왼쪽의 최강자가 대진표의 중앙에서 만나서 격돌하는 모양이 된다. 즉 오른쪽 진영의 최강자와 왼쪽 진영의 최강자가 중원에서 만나 천하의 패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일대 격전을 치르는 모양새이다. 가끔 한국의 국내 시합에서도 미국식 토너먼트 대진표를 가끔 볼 수 있는데 미국식 토너먼트 대진표에 익숙해진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그러면 우리와 미국이 토너먼트 대진표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모양으로 만들고, 미국은 좌우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것일까? 사실 이에 관해 학문적 연구를 한 자료를 본 것은 아니고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 혼자 추측을 해 보았다. 그리고 문자를 적는 방법의 차이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겼을 것이라는 것이 추측의 결론이다.
미국식 토너먼트 대진표의 경우 참가자의 이름을 영문으로 적을 것이고 이때에는 이름을 가로로 적는 것이 편리하다. 영문을 세로로 적는 것은 몹시 불편하다. 또 세로로 적었다고 하더라도 영문을 세로로 읽는 것은 퍽 불편하다.
예를 들어 6.25 때 병력을 파견해 우리를 도와준 나라 중 여덟 나라가 참가한 토너먼트를 상상하고 그 대진표를 만들어 보자. 그 여덟 나라는 터키, 태국, 네덜란드,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룩셈부르크로 하자. 그 영문 이름은 각각 TURKEY(TURKIYE), THAILAND, NETHERLAND, PHILIPPINES, ETHIOPIA, COLOMBIA, SOUTH AFRICA, LUXEMBOURG이다.
미국식 토너먼트 대진표는 이 참가국들을 둘로 나누어 왼쪽에 네 나라 오른쪽에 네 나라를 두면 된다. 그리고 이름을 적는 자리에 영문으로 적어도 괜찮고 한글로 적어도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 영문이든 한글이든 참가자 이름을 가로로 적는 것에 별반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덟 나라가 참가하는 토너먼트 대진표를 우리식으로 만들어 보면 조금 어려움이 생긴다. 우리식 토너먼트 대진표를 만들 때에는 대진표 맨 밑에 참가자 이름을 적게 되는데 이때 이름을 적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 이름을 가로로 적는 것과 세로로 적는 것이 그것이다.
참가자 수가 적거나 참가자 이름이 길지 않을 경우에는 이름을 가로로 적는다. 가로로 적는 것이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가자가 많을 경우에는 이름을 가로로 적는 것이 곤란하다. 고교팀이면 누구나 출전할 수 있는 백가쟁명의 봉황대기 고교야구의 경우 2021년에 84개 팀이 참가했다. 이때에는 참가자의 이름을 가로로 적는 것보다는 세로로 적는 것이 대진표 공간 절약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참가자 이름이 긴 경우에도 이름을 가로로 적게 되면 참가자 이름을 적는 공간이 옆으로 마구 늘어나기 때문에 대진표 작성이 어려워진다. 앞에 예를 든 8개국 참가 토너먼트 대진표도 이름을 가로로 적는 것이 좀 문제가 있으므로 세로로 적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영문인 경우에는 이름을 세로로 적는 것이 많이 어색하다. 게다가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영문으로 적을 경우 터키는 6개, 룩셈부르크는 10개, 남아공은 12개의 글자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참가자 이름을 영문으로 적으면서 우리식으로 대진표를 만드는 것은 이름을 가로로 또는 세로로 적더라도 무척 험난한 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참가자 이름을 영문으로 적으면서 토너먼트 대진표를 만들기에는 미국식 대진표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한글은 세로로 적을 수도 있고 가로로 적을 수도 있기에 토너먼트 대진표 맨 밑의 참가자 이름을 사정에 따라서 세로로 쓸 수도 있고 가로로 쓸 수도 있다. 그래서 한글은 승자가 위로 올라가는 우리식 대진표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승자가 위쪽에 자리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있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와 미국의 토너먼트 대진표 만드는 방식이 다른 것은 문자를 가로로 적는 것과 세로로 적는 것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무슨 학술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