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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와 조 바이든

2022-01-1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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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월 20일 미국은 희망과 기대에 차 있었다. 지미 카터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닉슨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포드를 물리치고 3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카터는 정치 경력이라고는 남부의 작은 주 조지아 주지사를 한 것이 전부였지만 오히려 이것이 그의 장점으로 꼽혔다. 지저분한 워싱턴 정치판에 물들지 않은 카터야말로 미국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킬 적임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정치적 미숙함은 단점으로 부각됐다.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테드 케네디를 비롯한 민주당 중진들도 땅콩 농부 출신인 카터를 우습게 봤다. 카터는 훗날 자신이 워싱턴에 와 가장 놀란 것은 의회가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고 털어놨다.


카터는 1973~1975년의 불황을 해결하기 위해 300억 달러의 경기 부양안을 통과시켰고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이었던 윌리엄 밀러도 돈을 풀어 이를 도왔다. 그러나 이런 급속한 통화 팽창은 인플레만 악화시켰을 뿐 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1976년 5.8%였던 인플레는 1978년 7.7%, 1980년 13.5%로 뛰었다.

카터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매파의 기수인 폴 볼커를 FRB의장에 지명했고 그는 연방 금리를 20%까지 올렸다. 이로 인해 인플레는 잡혔지만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고 결국 1980년 대선에서 선거인단 수 489대 49라는 카터의 비참한 패배로 이어졌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의 재임 기간 이란은 미국 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잡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0년 4월 ‘독수리 발톱’이란 이름으로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모래 폭풍과 장비 결함으로 실패로 끝나고 대원 8명의 목숨만 잃었다.

그는 또 전략 무기 제한 협정(SALT)을 타결시키며 소련과의 관계 개선에 힘썼지만 소련은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뒤통수를 쳤다. 그는 소련에 대한 곡물 금수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 등으로 맞섰으나 그의 국내외적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캠프 데이빗 협정’을 통해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를 성사시키는 등 업적을 남겼으나 이는 정책적 실패와 불운에 묻혔고 지금까지도 미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 1월 20일도 미국은 희망에 차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던 3류 광대이자 1월 6일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을 선동한 트럼프가 선거를 통해 권좌에서 축출되고 미국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공약한 조 바이든이 미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온건하며 오랜 정치 경험을 갖고 있는 바이든이 국민 통합의 정치를 펼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집권 후 바이든과 민주당이 보여준 행태는 이같은 기대와는 멀었다. 역사상 가장 작은 차이의 하원과 동수인 상원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민주당 좌파의 정책을 밀어부쳤다. 대표적인 것이 대대적인 사회 복지 개혁안인 ‘미국 재건안’이다. 한 표라도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총 경비는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부유층에 혜택 대부분이 돌아갈 재산세의 연방 공제는 대대적으로 늘렸다. 그리고 이를 반대한 조 맨신 민주당 상원의원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갔다. 이 법안은 그의 반대로 사실상 폐기됐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 극복 명분으로 연방 정부가 수조 달러의 지원금을 준데다 FRB가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연 1조 달러의 돈을 풀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가계는 돈이 넘쳐 소비는 폭증하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늘고 있는데 세계 공급망은 회복되지 않아 인플레는 40년래 최고인 7%대를 기록하고 있다. 2조 달러가 넘는 ‘미국 재건안’이 시행됐더라면 사태는 더 악화됐을 것이 분명하다.

맨신 하나를 적으로 만든 것으로는 부족했던지 바이든은 필리버스터에 관한 규정을 고쳐 새 투표법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 커스틴 시네마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이 반대 의사를 재천명하는 바람에 뜻은 이루지 못하고 망신만 당했다. 시네마는 새 투표법 제정에는 찬성이지만 그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없애는데는 반대임을 이미 밝혔음에도 바이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집을 부리다 정치적 타격을 자초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치욕적인 철수와 멕시코 국경에서의 난민 유입, 그리고 코로나의 기록적인 재확산 등 악재가 겹치면서 바이든 지지율은 일부 조사에서 4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이 상태로 중간 선거를 치른다면 민주당 대패는 불보듯 뻔하고 바이든은 제2의 지미 카터가 될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2024년 재출마를 공언하고 있는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을 차지하지 말란 법도 없다. 바이든은 제발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주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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