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에세이] 나이 착각
2022-01-13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주근깨는 우리 집 내력이다. 튀어나온 광대뼈 위로 보란 듯이 펼쳐진 점, 점, 점의 너른 분포.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이쁜 고모들을 거쳐 사촌들까지 대를 이어 전해온 주근깨는 한때 외모 열등감의 원천으로 나를 괴롭혔다. 복숭아 피부라나 뭐래나, 살결이 백옥 같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남편도 못 참았나? 결혼식을 앞두고 예비신랑은 나를 자기 친구, 피부과 의사에게 데려갔다. “없앨 수 있겠나?” 남편이 물었다. 피부과 전문의가 자신만만! 당시 소개된 획기적 기미 주근깨 제거시술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나는 소독약 냄새나는 치료실 한구석에 찌그러져 앉아있었다. 아아! 나는 그 날, 여리디 여린 두 뽈따구니 살갗이 케미컬 약품에 불타던 단말마의 고통을 잊지 못한다. 사람 살류우!
고통의 시간이 한 달 쯤 지난 결혼식 날, 거울 속 얼굴은 드디어 아기 피부처럼 뽀시시 피어올랐다. 오마나! 놀랍네! 과연! 그렇게 난생 처음 ‘복숭아’의 꿈을 이룬 내가 평소처럼 바닷가로 테니스장으로 맘껏 돌아다닌 지 또 한달 쯤이 지났을까? ‘복숭아’는 시들시들 말라가기 시작하더니 하낫 둘 셋 넷.... 다시금 끝없이 솟아오르는 주근깨의 부활! 나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가짜 ‘복숭아’는 안하기로 했다. 맘 접고 나니 세상 편하다. 그냥 주근깨와 더불어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긴다. 쨍쨍 해 좋은 날, 그늘 없는 갈대숲길 사이로 하이킹도 가고, 한낮에 멍멍이를 데리고 도그 파크에 가서 공놀이도 한다. 버몬 캐년의 클레이 테니스 코트에서 상대방의 공을 슬라이딩으로 받아내는 즐거움! 힘찬 서브를 넣으려고 공을 높이 띄워 올릴 때 두 눈에 부서지는 햇살은 찬란하다. 햇빛은 내 주근깨를 간지럼 태우며 비타민D와 세로토닌을 만든다. ‘복숭아’를 지키려고 이 ‘살아있음’의 환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왜 젊어 보이기 위해 평생 애를 쓸까?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의 질문, “나 몇 살로 보여요?” 이때 정답은 오답이다. 생각한 나이에서 무조건 열이나 스물은 빼고 대답할 것. ‘동안’이 칭찬인가? 나이가 뭐 잘못했나? 의학계는 오래 전부터 노화방지에 엄청난 연구비를 쓰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같은 또래보다 좀 덜 늙었다고 여긴다. 스톡홀름대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나이를 실제보다 평균 9살 낮은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졸업 30주년 기념여행에 모인 동창생 그룹을 멀리서 보고 “얘들이 다 어디 갔지? 저 늙은이들이 내 동창은 아닐테고!” 착각한다. 심리학이 말하는 ‘우월감 환상’이다. 자기가 하는 일은 다 맞는데 남들이 멍청이라 잘 몰라준다(직장인 88%). 자기 운전 실력은 남보다 낫고(미국인 93%, 프랑스인 78%) 부부가 헤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본인의 공(남편 87%, 부인 91%)이라 여긴다. 외모 역시 본인이 동기생들 중 젤 젊다고 여기며 속으로 으쓱한다. 즐거운 ‘나이 착각’! 그 으쓱 착각이 없다면 우울해서 이 고달픈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굳이 알고 싶다면 생체나이를 재는 의학적 테스트도 있다. 엄지와 집게로 팔등의 살을 집어 올렸다가 5초 후에 내려놓는다. 살이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20대는 1초, 30대는 2초, 40-50대는 4초, 60대는 8초 이상 걸린다. 이밖에도 안구조절검사, 떨어지는 물건을 잡아내는데 걸리는 시간 측정, 벌어진 무릎을 자극하여 반응시간을 재는 방법 등 노화 테스트 연구소의 측정 눈금은 세밀하다. 그렇다고 80대가 60대로 보이고, 60대는 40대로 보이고, 30대가 10대로 보이면? 그래서 어쩔텐가? 외출에서 돌아와 무거운 속눈썹 뜯어내고, 가면 같은 화장을 지우고, 콜셋 란제리를 풀면 마침내 찾아오는 휴우우~ 큰 숨 내쉬기의 자유! 새해엔 나이 그만 세고 생긴 대로 살자.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