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지 벌써 2주가 되어간다. 지금쯤은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해결심’을 흐지부지하고 있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새해결심의 성공확률은 8%에 지나지 않는다. 25%는 1주일도 안 돼 포기하고, 30%는 2주안에 포기하며, 절반 정도가 한달 안에 그만둔다고 한다. 이는 잘 알려진 대로 무리한 목표 설정이나 현실성 없는 거창한 계획, 또는 단순히 의지부족으로 빚어지는 결과들이다. 오래된 습관을 바꾼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매년 신년결심의 단골메뉴는 살 빼기, 운동하기, 걷기, 금연, 금주, 채식 등 주로 육체적인 것들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으니 당연히 중요한 다짐들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우리는 몸과 마음, 정신과 육체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전인적 존재라는 점에서 육체 못지않게 정신도 보살펴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현대 정신건강의학도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의 기본원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많은 신체질환이 정신적 요인에서 온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요즘이 어떤 시기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의 정신상태가 전같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햇수로 3년차. 이제 곧 풀리겠지, 내년이면 끝나겠지 하며 버텨온 세월이 2년이다. 격리와 해제를 지겹도록 반복하는 동안 맞으라는 백신도 부스터까지 맞았건만 이제는 오미크론까지 튀어나와 연일 최대기록을 경신하며 대유행의 피크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안하다”(anxious) “소진됐다”(burned out) “스트레스 받았다”(stressed) “우울하다”(depressed) “외롭다”(lonely) “고립감을 느낀다”(isolated) “갇혔다”(stuck) “공허하다”(empty) “불확실하다”(uncertain) “끝났다”(done)
작년 말 뉴욕타임스가 미국 50개주의 소셜워커, 심리학자, 상담가 1,320명에게 팬데믹 동안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 증상을 물었을 때 나온 단어들이다. 심리상담가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제2의 팬데믹’이라고 규정한다. 그만큼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마음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상담의 75%는 가족관계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부부 상담이 가장 많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정신상담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락다운 이후 온 가족이 한 공간에 갇혀 지내면서 실직 등의 재정문제 외에도 재택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아이들의 온라인학업 등이 겹치면서 일어난 일이다. 주위 변호사들에 따르면 팬데믹 동안 의외로 바빴는데 이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아시안 혐오가 늘어난 이후에는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호소하는 유색인종의 상담요청이 크게 늘었다. 특히 애틀란타 스파 연쇄총격살해사건 이후에는 아시안 여성들의 상담 요청이 급증했는데 전문 인력의 절대 부족으로 많은 테라피스트들이 환자를 돌려보내야했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이 새해라고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전문가의 40%는 올해 훨씬 더 악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면서 테라피스트들 역시 지쳐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내 마음을 내가 돌보고 지켜야할 이유다. 작은 희망과 움직임으로 2022년을 열어가면 좋겠다. 독서, 마음챙김, 긍정적인 사고, 가족과의 대화, 정원 가꾸기 등 정신과 영혼을 돌보는 새해결심이 많아지면 좋겠다.
신년계획으로 ‘결심’보다는 ‘단어’를 선택하라고 조언하는 건강심리학자도 있다. 자신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단어를 하나 골라 ‘올해의 단어’로 만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경험이나 희망, 꿈일 수도 있고 중요한 관계일 수도 있다. 건강, 절약, 성장, 가족, 열정, 우정, 리더십, 환경, 창의력, 회복, 미니멀리즘 등 어떤 단어도 좋다. 필요하다면 한 개 이상을 선택한다. 중요한 것은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 이 단어를 잊지 말고 상기하면서 처음에 가고자 했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결심과 달리 ‘단어’는 못 지키거나 깨질 염려가 없고 성취해야한다는 부담도 없다. 그저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지침이고, 여러 상황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할 때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좀 더 자주 ‘특별한 날’을 만들라는 심리학자도 있다. 우리는 파티, 여행, 결혼, 생일 같은 날만을 특별하게 여긴다. 우리의 뇌 역시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은 기억 속에 저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을까? 내 맘이다. 그냥 어느 하루를 미리 ‘특별한 날’이라고 선포함으로써 뇌를 속이고, 내가 그 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와인 영화 ‘사이드웨이즈’(Sideways)에서 남녀주인공이 이야기를 나눈다. “네가 가진 최고 와인은 뭐지?”(여자) “1961년산 슈발 블랑”(남자)(61년은 보르도의 전설적인 해, 슈발 블랑은 명품와인이다) “정말? 지금이 피크인데 당장 안 마시고 뭘 기다리는 거야?”(여자) “특별한 날이 오면 마시려고”(남자) “이봐, 네가 마시는 그 날이 바로 특별한 날이야”(여자)
남자는 인생에서 최악의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 정점을 찍던 날, 슈발 블랑을 들고 패스트푸드 점에 가서 혼자 햄버거를 먹으며 와인을 종이컵에 따라 마신다. 가장 비참했던 날을 스스로 가장 특별한 날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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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