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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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달력을 걸며

2022-01-11 (화)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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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맞이할 때마다 새로운 포부를 가슴에 새겨보려는 소원 한두 가지쯤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크게는 세계인 모두가 열망하는 코로나 열병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피치 못해 미루어 두었던 많은 일들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은 것도 각 개인마다 올해는 꼭 이루고 싶은 염원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체바퀴 돌 듯 매일매일이 그날이 그날 같다고 하더라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작심하여 무엇이든 다시 한번 시작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일일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 같은 지인이 새해 첫날 카톡으로 내 마음을 그려주는 글을 보내왔다. “눈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인가 하면 벌써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면 어느 사이 월말이 되어 있다. 내가 급한 건지 세월이 빠른 건지, 아니면, 삶이 짧아진 건지, 마음은 그대로인데 거울 속 나는 늙어 있고….”
어릴 땐 하루 자고 나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는데, 차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제는 한 해 한 해가 붙잡고 싶도록 아쉽게 여겨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젊었을 때는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왜 이렇게 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 새해 아침 훨훨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면서 문득 우리 일생을 사계절에 비유해 본다. 흔히들 청춘을 풋풋한 봄날로 간주하며 마음껏 젊음을 뽐내던 시절이 있었다면, 여름은 작열하는 태양처럼 솟구치는 열정을 불태우는 의지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 보는 시기였으리라. 때로는 매일매일 쌓이는 일들로 인하여 허둥대며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걸리고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다시 일어나 뛸 수 있는 재기의 시간도 중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면, 이슬에 속옷 젖듯이 어느새 다가와 있는 스산한 바람을 통해 가을을 느낀다. 살아오면서 펼쳐 놓은 일들을 다시금 재점검하느라 속절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이때쯤이면 일생을 책임지는 나이가 되고, 어느덧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 잔주름진 얼굴 위로 자리를 잡아간다. 오색 무지갯빛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인생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성급한 겨울이 문턱을 넘어와 무거웠던 어깨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때로는 저무는 저녁 하늘에 펼쳐진 오묘하고 아름다운 황혼의 노을과 마주하며 인생무상을 노래한다.

삶은 한편의 시나리오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인생의 사계절을 넘어갈 때마다 어느 한 계절 굴곡 없이 쉽게 넘어간 적이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지만,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어 늦게야 융숭한 겨울 밥상을 대할 수 있음을 깨닫는 지혜가 있기에 노년만이 갖는 무한한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 아닌가.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지붕 위 굴뚝에서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광경이 은빛 겨울 설경과 어울려 그지없이 평화롭다.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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