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떠오르는 어릴 적 추억들이 있다. 많은 일 가운데서도 나이 들어 생각나는 것은 모두 음식에 관련된 기억들이다. 방앗간에서 막 갖고 온,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래떡 한 줄을 떼어내 참기름 두른 간장에 콕 찍어 먹었던 기억, 또 딱딱해진 가래떡을 난로 위에 구워 먹던 기억들이다. 명절이면 음식 냄새 가득한 집안, 설설 끓는 뜨거운 음식으로 훈기가 가득했던 부엌, 만두를 빚거나 전을 부친다고 분주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만두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부엌일이라고는 냉장고 문도 안 열어 보시던 분인데, 슬쩍 끼어 앉아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찍어내시기도 했다.
그런저런 추억 때문인지, 설 무렵이면 꼭 만두를 해 먹고 싶어진다. 올해도 만두를 빚겠다고 나섰더니, 나와 남편뿐이다. 늘 아이들까지 둘러앉아 만두 빚기가 무섭게 먹어대면서 수선스러웠는데, 올해는 이렇게 달랑 둘이 되었다. 만두를 빚어본 적이 없다는 남편에게는 마늘 까기를 부탁했다. 식탁에 둘이 앉아 나는 만두를 빚고 남편은 마늘을 깐다. 이 모양새도 재미있어, 노래로 분위기를 띄워본다. “영감,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그러자, 남편이 화답한다. “봤지!”, “어쨌소?”, “친구랑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킥킥대며 노래를 하고 났는데, 가사가 뭔가 이상하다. 친구랑 먹었는데 뭘 잘했다는 건지, 그리곤 진짜 가사를 떠올려봤더니 그 가사 또한 그러했다. 자기 혼자 몸보신하겠다고 먹었다는 영감한테 잘했다고 하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영감이 뭘 하든, 마누라가 뭘 하든 무조건 잘했다고 하라는 교육용 노래였다. 가수들이 부를 때는 그냥 신나는 노래로만 알았더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노래였다.
그래, 맞다. 마늘 하나 까는 것도 어설픈 남편이지만, 도와주는 것도 고마우니 무조건 잘했다고 해야 할 일이다. 드디어 다 깠다고 남편은 손을 털고 일어난다. 마늘을 보니, 껍질이 아직 붙은 것도 있고 꼭지가 덜 떨어진 것도 있고, 상해서 못 쓰게 생긴 것을 아까워서였는지 그대로 넣어 둔 게 눈에 띈다. 남편 모르게 슬쩍 골라내면서 나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처럼 말을 한다. “잘했군 잘했어!”
아마 냉장고 문도 안 열어 보시던 아버지가 본인 좋아하는 만두 빚는다고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찍어 낼 때, 엄마도 속 다르고 겉 다르게 한마디 하셨을 듯하다. “잘했군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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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 (교회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