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말로 굳어진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당시 법무부장관이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의 득표 지원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썼던 표현이다.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여론은 분개했지만 상황은 반전됐다. ‘초원복집사건’ 이후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은 경상도를 중심으로 급등했고 결국 당시 대선의 승리는 김영삼 후보에게 돌아갔다.
한국 역대 대선 사상 가장 악의적인 지역감정 선동 사례로 기록된 ‘초원복집사건’은 오히려 세결집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의 비극은 시작됐다.
원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경상도에서 써온 겸양의 관용구다. 친지나 친구,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해 당황해 할 때 도움을 주거나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무뚝뚝하게 “우리가 남이가”하고 말하는 미풍이었다.
이런 덕담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선동 구호로 써먹으면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본래 의미를 잃고 말았다.
새삼스레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색이 짙은 “우리가 남이가”를 2022년 연초부터 꺼내든 까닭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서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 공동체적 정신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우리가 남이가”의 본질적 복원인 셈이다.
지난해 말 많은 독자들이 2022년 경제 전망과 관련해 가장 많이 질문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종식 여부다.
그만큼 우리는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너무 깊어 한인 경제의 곳곳에선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어 생채기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 미국 경제의 회복 전망 속에도 코로나19는 경제의 최대 변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CNN비즈니스는 지난달 31일 미국 경제 전망 기사에서 올해 미국 경제의 최대 변수로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꼽았다.
존스홉킨스대 집계로 미국에서 일주일 기준 하루 평균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지난 31일 기준으로 38만6,000여명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또 갈아치웠다. 2주일 전과 비교해 200% 늘어, 세배가 된 것이다. 다만 사망자 수는 1,200여명으로 2주 전에 비해 4% 감소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기존의 델타 변이보다 중증 위험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폭발적인 감염력 때문에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무너뜨릴 정도로 확진자가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경제 활동 주체들인 사람들이 개별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극명하게 배웠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고전적인 명제로 ‘너와 내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게 ‘경제’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남이가”의 본질적인 개념인 어려운 시기에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필요해지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경제 셧다운으로 모든 경제 활동이 멈춰 서면서 ‘수요와 공급’으로 연결되어 있던 경제적 관계들이 단절된 데 따른 고통들을 기억할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우리 이웃이자 경제적 주체들 중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공감의 마음이 올 한 해도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하기까지 가야 할 길도 멀어 보이지만 언젠가 그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은 우리에겐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밀 수 있는 정서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색 싹 빼고, 지역감정의 해묵은 낡아빠진 편가르기식 의미도 끊어 내면서 온전히 ‘우리’라는 공동체적 정신으로 충만한 “우리가 남이가”를 되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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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