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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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강물 덮음같이

2021-12-31 (금)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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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지만,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중간에 비를 만나더라도 맞을 각오를 하고 채비를 한다. 강물이 얼마나 불어났는지, 비가 온 후의 산천초목은 어떤 색깔인지, 쓰러진 나무는 없는지 마치 산림청 직원인 양 둘러볼 요량이었다. 큰 길가를 지나 강줄기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둑까지 가득 찬 강물은 출렁출렁 박진감 넘치게 바다로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가뭄에 밑바닥이 다 드러나고, 드러난 땅 위에 멋대로 자란 잡초들과 중간중간의 웅덩이에 고인 물은 멀리서도 썩었음이 여실했었건만, 모두 덮여 버렸다. 그 정도의 것들은 넘쳐나는 물로 다 덮어버리고도 남았다. 쓸데없는 잡음을 덮어버리듯, 필요 없는 것들을 휘몰아 치워버리듯 강물은 장엄하다 싶게 모든 것을 덮고 흘러내려 갔다.

지난 성탄 때, 나는 계속 그 강물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틀간에 걸친 성탄 미사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다. 미사 준비 외에 평상시의 업무까지 있으니,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어디선가 삐그덕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잠시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는 중에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느꼈다. 사소한 일에 언짢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 바쁜 날, 딸은 갑자기 꼬리뼈가 너무 아파 앉을 수도 없다며 연락을 한다. 어디 부딪혀 넘어진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꼬리뼈가 아프다는 건지, 이 와중에 병원을 갈 수는 있는 건지 난생처음 보는 꼬리뼈 통증 환자를 이런 날에 만나다니 걱정이 화로 변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따라 나온 남편은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데 그것조차 귀에 거슬린다. 세례증서를 만들고 있었는데, 귀에 거슬리는 것을 신경 쓰다 보니 바로 실수를 한다. 돈 주고 산 고급 양식서 한 장을 버려야 하니, 또 화가 올라오고 있음을 느낀다. 카톡은 연신 성탄 인사로 바빴다. 그 인사에 함께 기뻐하며 정성껏 인사를 할 수 없는 것도 힘들었다. 자꾸 마음에 골이 생기고 주름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힘들었다.

그러다, 그 강물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던 강물, 자잘한 구질구질한 것들을 덮어버리고 내 갈 길을 의연하고 굳건하게, 장엄하게 바다로 묵묵히 흘러가던 그 강물을 생각했다. 덮어버리자! 이 모든 골을 메우고 주름을 펴고 덮어버리고 가야 큰 강물이 되는 것이다. 계속 이 말을 되뇌면서도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나는 참 힘든 하루였다.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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