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즈음부터 새해에 이르는 10여일은 몹시 분주하리라 생각했다. 동부에서 아이들이 올 예정이었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면 조용하던 집안은 즐거운 소리와 맛있는 냄새로 그득해진다. 그렇게 북적북적 지내노라면 마음은 기쁘지만 몸이 고되다. 많은 식구들 해먹이고 거의 매일 놀러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몸살이 나지 않을까 미리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21년의 마지막 날들은 고요했다. 아이들 중 하나가 생일파티에 갔다가 코비드에 걸려 여행계획이 모두 취소되었다. 팬데믹이 마왕처럼 군림하는 시절, 당장 내일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올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의 날들이다.
1년 전 이맘때 우리는 2020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봉쇄와 격리로 단절과 불안 속에 살았던 암흑의 한해가 빨리 물러가기를 바랐다. 미 전국의 병원마다 코비드 환자들이 넘치고, 사망자는 30만을 넘어섰으니 팬데믹은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했다. 영국에서 알파 변이가 나타나 보건당국이 긴장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맞서 싸울 무기가 있다고 믿었다. 막 개발된 백신이었다. 모두가 백신을 맞고 집단면역이 생기면 더 이상 숙주를 찾을 수 없는 바이러스가 뭘 어쩔 것인가. 팬데믹의 먹구름은 걷히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2020년이 가고 2021년이 오고 다시 1년이 흘렀다. 팬데믹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사망자는 더 늘었다. 미국에서 코비드-19 혹은 그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는 2020년 38만 좀 못 되던 것이 2021년에는 44만이 되었다. 게다가 신종변이, 오미크론이 빛의 속도로 퍼지면서 7일 단위 일일 평균 신규확진은 이번 주 28만 건을 넘으며 지난 1월말의 최다기록을 경신했다. 백신 보급이 팬데믹을 끝내리라는 예단은 너무 단순했다.
두 가지를 예측하지 못했다. 첫째는 백신거부 사태. 백신 나오면 당연히 누구나 맞으리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목숨 걸고 접종을 거부하는 부류가 있다. 미국의 접종 완료 비율은 62%.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둘째는 극빈국들의 열악한 보건 환경. 바이러스는 국경을 모른다. 미국에 사는 우리만 백신 맞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남아프리카에서 필시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들을 숙주로 형성된 오미크론 변이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가공할 전파력의 오미크론에 더해 악천후가 겹치면서 연말 항공 대란이 일어났다. 수천편의 운항이 취소되었다. 공항에서 우왕좌왕하는 여행객들을 보니 우리 가족들이 방문을 포기한 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가족이,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보고 싶다고 보러 갈 수 있는 게 아닌 세상 -“우리가 정말이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한 지인은 말했다.
팬데믹의 지난 2년은 고통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지를 잃은 비통함, 건강을 잃은 절망감, 비즈니스를 접어야 했던 참담함 등 고통을 견디며 살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두려움은 불안 초조 우울 불면의 쓰나미를 몰고 왔다. 일종의 집단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이다. 이 쓰디 쓴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팬데믹이 세상을 뒤엎은 지난 2년 관련 연구들이 다방면으로 진행되었다. 그중 한 줄기는 팬데믹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연구이다. 팬데믹이 몰고 온 고통스런 경험 속에도 득이 되는 뭔가가 있으리라는 전제이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는 팬데믹 봉쇄 중 긍정적 요소들을 발견했다고 답했다. 팬데믹 이전에 비해 배우자와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진 것, 이웃과 엄청 친해진 것 등 관계의 강화가 우선적으로 꼽혔다. 아울러 샤핑이 쉽지 않아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면서 간소한 생활이 몸에 밴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스페인에서 실시된 연구에서도 응답자들은 격리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한편,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이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도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다.
코비드-19은 영원히 정복되지 않을 수 있다. 바이러스가 신출귀몰하기 때문이다, 같은 코비드 계열인 사스(SARS)는 환자의 증상이 심한 후에야 전염되는데, 코비드-19은 무증상감염이 가능하다. 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이러스를 마구 퍼트린다. 게다가 인수공통 감염이다. 인간 숙주를 찾지 못하면 동물 몸속에 숨어 있다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심한 감기나 독감의 형태로 우리 곁에 남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모든 고통스런 경험에는 교훈이 들어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이치이다. 팬데믹의 쓰디쓴 경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쓰러지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겸손함을 배워야 하겠다. 삶은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차적인 것들을 버리고 정말로 의미있는 것들에 헌신해야 하겠다. 그런 성찰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소중한 관계들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사회적으로 성숙하며, 생명과 삶에 대한 통찰로 영적으로 성숙한다면 팬데믹의 쓴 잔은 가치가 있다.
2022년, 다시 출발점에 선다. ‘다시’ ‘출발’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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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