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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아름다움의 공유

2021-12-29 (수) 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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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옷매무새와 머리 단장이 예전과 같지 않지만 저의 기억 속 어머니는 젊으실 적 상당히 세련된 아줌마였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서 어머니란 이름으로 가장 큰 희생을 하셨지만 항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지런히 관리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10대 소녀 같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요새 저는 그런 젊을 적 저의 어머니를 매일 마주하는 기분입니다. 왜냐면 저희 네살 먹은 둘째 딸의 성향이 저의 어머니를 점점 닮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핏속에 흐르는 DNA의 영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꼭 연신 감탄을 하며 행복해 하셨던 저희 어머니처럼 둘째도 그런 섬세하고 미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크리스마스에 아이에게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더 화려하고, 고급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여 주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잠깐 들리기로 했습니다.

쇼핑이라는 말에 아이는 아침부터 단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저에게 고데기로 머리를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네살짜리 제 딸은 10대도 아닌데 벌써 고데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씩 이런 제 아이의 유난한 멋부림에 기가 찰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온 후라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공용 주차장은 만차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유료 주차 공간에 차를 두고 아이와 함께 유니온 스퀘어로 향했습니다. 커다란 트리뿐만 아니라 명품 가게들 안에 독특한 크리스마스 장식, 거대한 샹들리에, 그리고 하나의 작품같은 상품 진열이 일품이었습니다. 둘째가 제 손을 끌어당깁니다. 아마도 아이의 미적 감각이 작동을 하는지 조그만 발이 바쁘게 움직이며 이곳저곳 상점들을 둘러보고 또 상품들을 만져보며 즐거워 합니다.

그런 저희 둘째를 바라보며 제 어릴 적 백화점 근처도 가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괜히 눈만 높아진다며 한사코 시장 옷만 입으셨던 나의 어머니. 힘들었던 그 시대 어머니들에게 아이쇼핑조차 아마도 즐거움이 아닌 사치였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비록 빈손으로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두시간 동안 저와 딸은 거리의 아름다움을 공유했습니다. 안쓰러운 나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감수성을 물려받은 제 딸에게는 아름다움을 누릴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 주고 또 아이의 재능을 후원해 주기로 조용히 마음의 다짐을 해 봅니다.

<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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