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운명이 된 이름
2021-12-28 (화)
장아라(첼리스트)
어릴 적 내겐 자식처럼 사랑한 강아지가 있었다. 우리 집에 온 날 실수로 약간 높은데서 떨어졌는데 아팠는지 ‘깨갱 깨갱’ 하며 울었다. 나는 그것도 귀여워 이 강아지 이름을 ‘깨갱이’라고 지어주었다. 깨갱이는 우리 가족 중에서 아버지와 나의 독보적인 사랑을 받으며 6년 정도를 같이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사라졌다. 당시 우리집에는 아직 돌이 안된 조카가 천식을 앓고 있었다. 그 이유로 집안에 과연 개를 키우는 게 맞느냐 하는 논쟁이 한창이었는데 그 와중에 강아지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깨갱이와 갑작스런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비통함을 담아 가족에게 항의의 뜻을 표현하고자 처음으로 가출을 해서 하룻밤을 안들어왔는데 돌아온 후에도 내가 집 나갔던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웃픈 사연이 있다. 어쨌든 그렇게 깨갱이는 가슴에 묻었다.
나는 훗날 TV 예능에 나온 ‘상근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개를 보며 깨갱이를 떠올렸는데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수년을 깨갱이로 불린 깨갱이의 운명이 정말 깨갱스럽게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이름을 너무 경박하게 지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무엇이든 그것을 떠올리며 계속 불리우는 단어나 글귀가 그게 운명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은 내가 나이들면서 여러 번 맞닥뜨린 깨달음이다.
지난 여름 친정에서 어릴 적 물건을 정리하며 내가 쓴 서예 작품을 찾아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붓글씨로 한가락 했었는데 나를 가르쳐주신 스승님이 내게 지정해주신 시조가 신사임당의 ‘읍별자모’였다. 나는 대회를 나가든 전시를 하든 그것을 늘 외워 적었는데 이번에 내용을 다시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내리네.’ 이것은 먼훗날 한국 방문 후 친정식구를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비행기 속에서 밖을 바라보는 내 이야기였다. 슬픈 가사의 곡으로 히트를 친 몇몇 유명 가수들의 인생를 떠올려보면 이런 운명같은 일이 왕왕 일어나는 일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정말 잘 만들어진 가사이다. 애국가가 바뀌지 않는 한, 수천만이 불러댄 이 가사로 인하여 내 조국에 대한 축복은 영원하리라 믿어본다.
<
장아라(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