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부부의 코드
2021-12-27 (월)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Mrs. 고는 대학 시절, 미팅에 나갔다가 남편을 만났단다. 그런데 Mr. 고가 처음부터 어찌나 그녀의 말을 재미있어 하는지, 하는 말마다 크게 웃고, 하다못해 Mrs. 고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만 벌려도 이미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웃어젖혔다나. 사실 그분이 말도 좀 재미있게 하고 웃기는 분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부부는 나이 들도록 웃으며 잘 살고 있다. Mrs. 채는 Mr. 채가 하는 말이 그렇게 우습고 재미있단다. 내가 듣기에는 그저 그런데도, ‘아이, 저 사람은 저렇게 말을 재미있게 한다니까요’ 하며 정신없이 웃는다. 아마도 웃음 코드가 잘 맞는 모양이다.
또 어떤 부부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데..’ 하고 입만 떼도, 남편이 얼른 나서서 ‘그런 얘기 하지마. 쓸데없이 왜 그런 말을 해’ 하며 윽박지르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럼 또 여자분도 질세라 끄떡 않고, 하려던 말을 결국은 하고야 만다. 남들 앞에서도 곧잘 싸우는 부부도 있다.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그래도 식사시간이 되면 음식을 챙겨주고 같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잘 드시는 걸 보면, 이게 그분들의 사는 방식인가 보다. 이기건 지건 상관없이, 어쩌면 이것마저도 즐겨 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부부는 아마도 그런 면에서 가장 공통 분모가 많은 사람들 간의 만남이 아닐까? 같은 주제에 같은 반응을 하고, 웃음 코드도 같아서 남보다 더 같이 재미있어 하고, 화를 내도 같이, 미운 사람도 같이 미워하고, 뭐든지 같이. 오래 산 부부일수록, 비록 남들 앞에서는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워 보여도, 진짜 속마음은 믿고 아껴주고 알뜰살뜰 챙겨주는 게 무언 중에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오래 같이 산 부부들은 얼굴도 닮는다고들 한다.
상대방을 보면 내가 보인다? 위험하기도 하다. 남편이 배배 꼬이고 찡글뱅이 같다는 건 어찌 보면 나도 바로 그렇다는 얘기다. ‘당신은 왜 그래?’ 라며 타박하고 나무랄 수 없는 큰 이유도 된다. 저 사람이 원만하고 행복하게 보이는 게 바로 나 자신이 반영된 모습이라면, 상대방을 위해서만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라도, 오늘부터라도 많이 웃고 모든 걸 받아들여주고 이해해 보리라 다시 한 번 결심을 해본다. 이 해는 다 가고 있으니 ‘작심삼일’이면 또 어떠리. 그 다음해에 다시 새 결심을 할 기회가 분명 또 올테니까.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