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리고 손이 곱을 정도의 추운 날씨가 며칠 계속되니, 이제야 겨울인 것 같다. 차창에 얼어붙은 성에를 걷어내면서 이제 겨울 한복판, 연말이 왔음을 피부로 느낀다.
연말이 되면 새 달력을 받아들고 부모님 생신부터 가족들 생일, 친구 생일을 찾아 기록해 둔다. 사무실 달력에는 월별로 해야 하는 일을 빠지지 않고 기입해 놓는다. 그 일을 끝내고 나면 드디어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이제 더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말자고 다짐 아닌 다짐도 해본다. 새해라고 세운 계획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평생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뀐다고 세상 시끄러운 것에 맘을 수선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조용히 있고만 싶은데, 가끔은 세상 박자에 맞춰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 계획도 멋지게 세워야 하나 수런수런 출렁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세상 시끄러움에 넘어갈까봐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어느 신부님께서 성탄을 기다리면서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은 돌이킬 기회를 주는 은혜로운 시간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변에서 연말연시라고 수선스러운 것이 싫어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닻을 내리기만 하려고 했지, 진정한 의미로 한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할 마음가짐을 가져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시간을 내어 올해 나의 삶을 차분히 돌아보았다. 누군가와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나이 60이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이라지만, 여전히 내 생각과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가슴이 벌렁거리고 목소리가 커져서 앞사람 모르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내가 뭐라고 나의 앎과 생각으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단죄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거리가 멀어진 이들과의 사이를 메우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내년에는 귀가 순해져서 다른 이들의 말을 잘 수용하고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제는 좀 나를 내려놓고 낮은 곳에 있을 수 있을까?
내년이 되었다고 이 일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만, 돌이킬 기회를 주신 이 시간에 마음을 돌이켜 볼 뿐이다. 미움으로 가던 마음을, 단죄하려던 마음을 돌이켜 선함으로 가려고 마음을 돌이켜 볼 뿐이다. 채널을 돌리듯 마음의 각도를 돌리려고 할 뿐이다. 그렇게 삶의 방향만 조금 바꿔도 내년의 나는 조금 더, 한 뼘만이라도 성장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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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 (교회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