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는 한 때 전복으로도 유명하던 곳이다. 메인의 바다 가재, 메릴랜드의 게(블루 크랩)처럼 캘리포니아 하면 전복을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직경 20cm가 넘는 대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캘리포니아에서는 자연산 전복이 나지 않는다. 2026년 3월까지는 전복 채취를 전면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이 내려져 있다. 그 많던 전복은 다 어디 갔는가.
원인을 알려면 우선 앵글을 북가주 멘도시노 카운티 법정으로 돌려 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와인 산지인 소노마 카운티 북쪽인 멘도시노는 한적한 바닷가. 전복 시즌이 되면 이 일대에는 연 3만명이 넘는 외지인이 전복 채취를 위해 몰려왔다. 전복을 따러 갔던 한인들의 치명적인 사고 소식이 전해지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7년 5월 어느 날, 멘도시노의 작은 법정은 40여명의 피의자로 북적거렸다. 가정폭력 때문에 소환된 마을 주민 한 사람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이런저런 전복 규정을 어겨 티켓을 받은 사람들. 인종별로는 100% 아시안이었다. 법정 통역이 필요해 사용 언어별로 파악하니 대다수가 중국어와 베트남어 구사자, 한국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는 네 명 정도였다. 이민 연조가 어느 정도 된 한인들이 불려 나올 자리가 아니었다. 판사 등 법원 관계자 6~7명은 백인 일색이어서 대조가 됐다.
규정 상 전복은 직경 7인치 이상 되는 것을 한 번에 최대 3마리까지 산지 반출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별도 퍼밋이 필요하다. 채취 과정에서 사소한 규정 위반도 용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복을 땄는데 옆에 더 큰 전복이 보여 얼른 내려 놓고 다른 걸 집어 올려도 안 된다.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재판과정에서 잡아 떼면 틀어 보인다는 동영상을 보면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지만 이 장면이 딱 나온다고 한다.
개방 혈관계여서 핏줄 없이 심장에서 피가 바로 각 기관에 스며드는 전복은 사람으로 치면 혈우병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지혈이 안돼 한 번 피가 나면 멈추기 어렵다. 작은 상처에도 과다출혈로 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채취 과정에서 바꿔 치기가 안 되는 이유다. 전복 피는 투명해서 잘 식별되지 않을 뿐이다.
바위에 붙은 것을 뗄 때 칼이나 스크루드라이버를 쓰는 것도 금지돼 있다. 자 등 채취 도구는 개인별로 소지해야 하고, 잡은 즉시 현장에서 딴 장소, 날짜, 시간을 적은 꼬리표를 붙여야 한다. 마리 마다 일일이 채취 정보를 담은 전복 리포트를 주 수렵국(CDFW)에 제출하게 돼 있다. 매년 4월 전복 시즌이 시작되면 프리웨이로 연결되는 산길에는 체크 포인트가 들어서기도 한다. 순전히 전복의 불법 반출을 막기 위해서다.
전복 단속이 이처럼 삼엄한 것은 전복 일부가 멸종 위기에까지 이른 데는 인간의 탐욕이 주원인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전복은 암수 개체가 6피트 이상 떨어져 있으면 증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수컷의 정자 방출 반경이 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채취는 전복의 생식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에는 7종의 전복이 분포해 있다. 이 중 한 종류를 빼면 나머지 6종은 멸종 위기나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종으로 올라와 있다. 한 때 LA근해, 팔로스 버디스 앞 바다에도 흔했다는 흰 전복은 99%가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인들은 원래 전복을 식용으로 즐겨 찾지 않았다. 이랬던 전복이 1900년대 초 중가주 몬터레이의 한 식당 주인에 의해 처음 식감도 부드러운 스테이크로 개발된 후 이야기가 달라졌다. 상업용으로 한 해 채취되는 것만 수백만 파운드에 이를 정도로 새로운 맛의 해산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자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 1997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이남의 전복 채취를 금지했다. 그나마 붉은 전복 한 종류만 북가주 해안에서 소량 채취를 허가했으나 다양한 복원 노력에도 개체 수가 급감하자 4년전 전면 채취금지령을 내렸다. 이 조처는 올해 5년이 연장됐다.
지금처럼 엄격한 보호 조처가 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캘리포니아의 전복은 사라지고 있다. 원인을 인간의 탐욕 탓으로만 돌린다면 억울하다. 지금은 남획 보다 전복의 생존에 필요한 생태 환경이 바뀌고 있다.
어른 손바닥 보다 더 큰 전복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멘도시노의 전복 밭에 들어서면 그곳이 다시마 숲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복이 번성하려면 먹이인 해초가 풍부해야 한다. 숲이 사라지면 새가 오지 않듯 바다 속 수풀이 없어지면 전복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해수의 온난화는 기존 해조류의 황폐화를 불러오는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먹이 활동에서 전복과 경쟁 관계인 보라색 성게는 급증했다. 먹이를 삼키지 못하는 전복 마름병도 발견됐다. 전복은 제 살을 갉아먹다가 빈 껍질만 남기게 된다. 전복 친화적이던 캘리포니아의 해양 환경이 전복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복원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북가주의 연구소 수조에서 배양된 어린 흰 전복 3,000마리가 원래 고향인 LA 근해에 방사됐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팬데믹으로 새로운 정상, 뉴 노멀이 유행이다. ‘전복 없는 캘리포니아’가 또 다른 뉴 노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복의 홈커밍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결과는 더 두고 봐야 알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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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