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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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세대?

2021-12-20 (월) 장아라 /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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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70년대에 늦둥이로 태어난 내가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해왔다. 고등학교 때 연대장이었던 큰언니처럼 군대 시스템이 고등학교에 있던 것도 아니었고 교련 수업을 받지도 않았다. 나는 어머니와 버스를 오래 탈 일이 생기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매번 졸랐고 어머니는 “그 얘기를 또 해줘?” 하면서 6.25 전쟁 때 얘기를 해주셨다. 어머니는 1939년생이셨으니 어머니의 전쟁 때 기억은 신빙성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두꺼운 솜이불 때문에 총알이 뚫지 못해 살았다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다. 그 외에도 기억나는 것들이 있는데 나중에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 장면과 짬뽕이 되어 무엇이 내 기억인지 무엇이 소설 내용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나는 박완서 소설 속의 전쟁 장면을 내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박진감 넘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작가가 가족을 전쟁통에 잃고 아들이 부상당하는 내용은 내 혈육인 양 가슴이 아팠다. 나는 작가가 죽기 전까지 남긴 글들을 내 할머니가 적은 글인 양 빠짐없이 읽었다. 나의 시아버지는 북한에 남은 형제가 계셨는데 당신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 생사조차 알 수 없었으니 가정마다 전쟁에 관련된 비극은 한국인이면 다 있는 것 같다. 그 고통을 겪고 힘차게 일어나 국가를 재건한 세대를 부모로 둔 나는, 세계 유례없는 급성장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혜택을 받으며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살아왔다.

2021년 연말, 윗세대에 비하면 꽃길만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와 같을 거라고 예상했던 수년 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 세대’라고 불릴 만한 시간을 지나고 있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두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 건 전쟁보다 더 한 상황이다. ‘설마 내 아이가…’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상가는 떼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뉴스를 보며 나도 페퍼 스프레이를 구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총기난사 협박 메일을 받고 있고 부모는 내 아이의 성별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축복 받은 세대라고 굳건히 믿던 내 믿음은 지난 몇 년 대반전을 이루고 있고 내 후대에 대한 걱정이 물밀듯 밀려온다. 주저앉지 않고 오뚝이처럼 서왔던 선조들처럼, 무언가 후대를 위해 해야 할 세대인 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장아라 /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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