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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선물’

2021-12-17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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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준비가 큰 숙제인 때이다. 가족 친지들의 나이, 성별, 취향 고려하며 선물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도대체 뭘 선물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것. 집집마다 물건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물은 물건의 산더미 위에 물건을 더 하는 것. 한 인터넷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때 원치 않는 물건, 없어도 될 물건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는 미국인은 60%가 넘는다.

어떤 선물을 해야 받는 사람 기쁘고 주는 사람 행복할까. 노년층 대상 인터넷 매체에 매리 루 윌슨이라는 93세의 할머니가 기고를 했다. 손주에 증손주까지 둔 이 할머니는 매년 할러데이 시즌이면 가족들로부터 ‘뭘 선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90대 노인에게 무슨 물건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으니 만만한 게 폭신한 슬리퍼나 퍼즐게임, 초컬릿 정도. 할머니는 이렇게 썼다.

“눈 오는 겨울밤, 따뜻한 게 좋기는 하지만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양말과 슬리퍼가 필요하겠는가. 퍼즐은 내 남은 생애 내내 해도 다 못할 만큼 쌓였고, 초컬릿은 당뇨 걱정을 부른다.”


그래서 할머니는 젊은 세대 - 80세 미만 -에게 노인들이 좋아할 선물 아이디어를 주기로 했다. 첫째는 운전 선물. 밤 운전, 프리웨이 운전 못하는 노부모, 조부모 혹은 친지를 위해 하루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다. 샤핑몰이나 뮤지엄,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나 교회 예배 혹은 젊은 시절 살던 동네 등 평소 노인이 가고 싶어 하던 곳으로 모시고 간다.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같이 먹는 매 순간이 노인에게는 특별한 즐거움이 된다.

둘째는 도우미 선물. 장보기, 자동차 타이어나 오일 점검, 이발소나 미용실에 모셔가기 등 뭔가 노인이 필요로 하는 일을 돕는다. 셋째는 부탁 선물. 젊은 세대는 노인들에게 도무지 부탁을 하지 않는다며 노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뜨개질이나 단추 다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도 좋고, 자선단체 기부를 부탁해도 좋고, 소소한 뭔가를 도와 달라는 부탁도 좋다.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다. 할머니 자신은 3,000마일 떨어져 사는 증손주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주로 영상통화로 책을 읽는데, 이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고 요즘 아이들의 관심을 알게 되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넷째는 액자에 넣을 수 있는 사진. 모든 사진을 셀폰으로 주고받으니, 노안에 사진이 너무 작을 뿐 아니라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손주들 사진을 봉투에 넣어 그냥 우편함에 넣기만 하라는 것이다. 사진액자는 노인들에게 크기별로 다 있으니까.

사진이 유일한 ‘물건’ 선물일 뿐 할머니가 내놓은 선물 아이디어의 핵심은 하나다. ‘시간’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다. 운전을 해주든 도움을 청하든 자녀나 손주들이 집에 들락거리며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것이다. 이어 할머니는 다섯 번째로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선물’을 소개한다. 최고의 선물, 그건 ’너’라는 것이다. “너의 목소리를 듣고, 너의 시간과 사랑을 조금 얻는 것”이라고 했다. 팬데믹 거리두기가 몸에 밴 지금은 특히 사람과의 접촉, 인간적 관계가 그립다고 할머니는 썼다.

매년 성탄시즌이면 주목받는 동영상이 있다. 독일의 수퍼마켓 기업인 에데카(EDEKA)의 2015년 크리스마스 광고이다. 배경은 삼남매 잘 키운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 자녀들은 독립해 집을 떠나고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절해고도 같은 집에서 노인은 혼자 산다. 매일 아침 혼자 일어나 혼자 밥 먹고 혼자 하루를 보낸다.

세계 각지에서 바쁘게 잘 살고 있는 삼남매가 아버지에게 전화 메시지를 남긴다. 이번 성탄절에는 집에 못 간다는 내용들이다. 노인은 익히 짐작했던 듯 표정이 담담하다. 장면이 바뀌며 등장하는 것은 갑작스런 아버지 사망소식에 망연자실한 삼남매. 회한으로 눈물범벅이 된 채 부랴부랴 집에 도착한다.

그런데 검은 상복 차림의 이들을 맞은 건 뜻밖에도 아버지.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너희 모두를 불러 모을 수 있겠느냐”며 노인은 자녀들을 맞고, 대가족은 모처럼 크리스마스 만찬을 함께 하며 시끌벅적 행복하다. 웃음소리 대화소리를 배경으로 “집에 올 때(Zeit heimzukommen)” 라는 글귀가 스크린에 뜬다. 자녀들이 집에 오는 것, 와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 그저 함께 있는 것 - 노인이 몇 년째 원했던 선물일 것이다.


선물을 한다는 것은 물건에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행위. 마음이 본질이다. 물질주의 소비주의가 부추긴 샤핑을 잠시 멈추고 선물의 본질을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마음으로 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한해가 저물며 성탄절을 맞는다. 스스로를 온전히 내어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온 존재를 내어놓지 못하지만, 시간과 마음을 좀 나눌 수는 있어야 하겠다. 특히 그것이 누군가가 정말로 원하는 선물이라면.

성탄절에 혼자 지내는 노부모가 없기를 바란다. 외로운 마음들이 좀 덜 외롭기를 바란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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