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연말이 되면서 성당 사무실은 여러모로 챙길 것도 많고, 혹시라도 뭐가 빠진 게 있나 확인하면서 내내 마음 졸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확인하며, 이제는 되었거니 그러면서 한숨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아는 자매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가정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시 찾아온 고통이라는 것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부부 모두 불평불만이나 남의 얘기는 입에 올리지도 않는 사람들이고,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몸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던 분들이었다. 고통에 대한 여러 질문이 불쑥 튀어올랐다 가라앉기를 한참, 그러고도 질문에 대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살면서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겠다 싶은 것을 겪고 나도, 또다시 더 큰 고통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래도 고통을 통해서 단련되고 성숙해지는 것도 분명 있음을 안다. 그러나, 아직 공부를 마치지 않은 아이들과 가장으로 애를 쓰며 사는 남편을 두고 암 치료에 들어가는 자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을 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자매에게 무슨 말이 귀에 들어오고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는가 싶어 연락을 할 수조차 없었다.
저녁 무렵에서야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세워, 어둠 속에서 당신은 아무도 안 보이지만 곁에 누군가 함께 있으며,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사실만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연락을 취했다. 잘 회복되어 나중에 보자는 자매의 담담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끙끙거리고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에 걸리고, 가족들도 마음에 걸렸지만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도 침울한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남편이 아침에 불쑥 핸드폰을 내민다. 자매의 남편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다.
“오늘은 코헬렛에 있는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구절을 묵상하면서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선배님 기도해주시고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고통에 대해 답 없는 질문을 하며 점점 침울해지던 나에 비해, 고통 가운데 있는 분은 이미 고통을 껴안고 불행이 아닌 행복에 대해 말하고 계셨다. 자매한테 이런 남편이 있다는 것도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그래도 행복한 날이니 행복하게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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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교회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