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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자는 왜 도시를 망가트리나’

2021-12-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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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해질 무렵 금문교를 건너 한 때 포대가 있던 언덕 위에서 보는 석양과 도심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며 펼쳐지는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도시가 아름다운 까닭에 도시를 소재로 한 노래도 아름답다. 토니 베넷의 대표작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마음을 놓고 왔다’(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에는 ‘I’m going home to my city by the Bay…/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To be where little cable cars climb halfway to the stars’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언덕과 바다와 별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샌프란시스코시 공식 시가의 하나다.

이 도시에 관한 노래로 ‘샌프란시스코(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도 빼놓을 수 없다. 60년대 히피와 ‘플라워 파워’, 반전 운동의 상징과 같았던 이 노래에는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You’re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Gentle people with flowers in their hair’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60년대 이들 노래에 나온 낭만의 샌프란시스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진보주의자는 왜 도시를 망가트리나’(San Fransicko: Why Progressives Ruin Cities)를 쓴 마이클 셸렌버거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전체가 오물과 마약 주사기로 범벅이 된 쓰레기통이다. 2015년에서 2018년 사이에만 시 당국은 300개의 가로등을 교체했는데 그 이유는 하도 많은 홈리스들이 오줌을 눠 기둥이 썩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로등 하나는 쓰러져 인근에 있던 차가 박살났다. 2018년 한 해에만 시 당국에 걸려온 길거리 인분을 치워달라는 전화가 2만 통이 넘는다.

이처럼 길거리에 오물이 넘쳐나는 것은 이곳이 미국 홈리스들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보호소 수용을 거부하는 홈리스 인구는 5,000명이 넘는데 이는 15년 사이 두배가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마이애미 홈리스는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50% 감소했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의 절대 다수는 보호소가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길거리에서 살고 있다. 그 주 이유의 하나는 상당수가 마약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에서 주는 웰페어 체크를 길거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마약 구입에 사용하고 푸드 스탬프는 현찰로 바꿔 용돈으로 쓴다. 원래 사회주의자였던 저자가 쓴 이 책에 나오는 탐이란 인물은 시에서 매달 받는 581달러로 헤로인을 구입하고 192달러 상당의 푸드 스탬프는 달러당 60센트씩 현찰로 바꿔쓴다고 털어놨다.

샌프란시스코의 1인당 웰페어 액수는 709달러로 뉴욕 195달러, 시카고 120달러, 피닉스 34센트보다 월등히 높고 마약에 관한 단속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전국의 마약 중독자와 홈리스가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은 6,200건이 넘는 쓰고 버린 마약 주사기를 치워달라는 청원을 당국에 제기했다. 이곳 주민 중 65세 이하 사망 원인 1위가 약물 과다 복용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2008년과 2019년 사이 도요타와 찰스 슈왑 등 1만8,000개의 기업이 ‘나쁜 비즈니스 환경’을 이유로 가주를 떠났다.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도 가주에서 텍사스로 최근 이주했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ATM이나 버스 안에서의 ‘적극적인 구걸 행위’와 길거리에서 잠자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지만 ‘홈리스 인권 운동가들’의 반대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홈리스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하는 법규라는 게 그 이유다. 이들에 따르면 홈리스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 제도와 인종 차별주의의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어떤 규제도 허용될 수 없다.

가주가 2014년 950달러 이하 절도를 ‘경범죄’로 규정한 주민발의안을 통과시키고 시애틀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경찰 예산을 삭감하거나 아예 없애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범죄자들은 잘못된 사회 제도와 인종 차별의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단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살인 사건과 떼강도가 넘치고 홈리스가 계속 늘며 주변이 자꾸 지저분해진다면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과 진보주의자들이 편 잘못된 정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홈리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이들에 대한 현금 지원을 늘리고 마약을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라며 공공 장소에서의 마약 사용을 방임하면 그런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홈리스에 대한 현금 지급 대신 재활과 보호소 수용을 의무화 하고 마약 규제와 범죄자들에 대한 응징을 강화하지 않는 한 도시는 계속 더럽고 위험해지며 망가질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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