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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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

2021-12-13 (월)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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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골든게이트 공원 근처에서 프리스쿨 아이들 열 명 가량이 나들이 나온 걸 만났다. 꼬마들은 긴 끈에 붙은 손잡이를 양쪽에서 하나씩 잡아 기차가 되고, 선생님들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가끔씩 다함께 노래도 부른다. ‘런던 브릿지 이즈 폴링 다운 폴링 다운.’ 사람들은 모두 활짝 웃는 얼굴이 되어, 아이들이 지나갈 때까지 발을 멈추고 쳐다들 본다. 귀여운 꼬마들, 그저 작으면 다 귀엽고 예쁜 건가 보다.

앞뜰에 국화를 심었다. 여러 해 잘 클 것을 전제로 제일 작은 것을 골랐다. 밝은 노란색이어서인지 코너에 심어 놓으니 눈에 잘 띄고, 작지만 노란 꽃잎들이 활짝 피니 크고 비싼 꽃 못지 않았다. 어느날 어떤 남자가 집 앞에서 서성거리기에 무슨 일인가 내다보니, 그 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만약 우리가 멀리 있는 큰 것들에만 마음이 팔려 가까이 있는 작은 것들을 놓친다면, 잃게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뒷뜰에 피어 있는 작은 꽃을 찾아온 허밍버드(벌새)의 날갯짓 소리, 벽장 속에 갇히는 바람에 한나절을 굶고 있던 고양이의 애절한 울음 소리, 큰 언니들의 거침없는 대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든 자기 목소리를 한 번 내어 보려고 애쓰는 막내 손녀의 여러번에 걸친 ‘Hey, guys!’ 그래도 몇 번의 시도 끝에 큰 언니가 들어주어서 한마디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대여섯 살, 딸은 두서너 살 때의 일이다. 당시 사진을 보면 둘 다 작고 귀여운데, 그때는 아들이 큰 애라고 생각이 되었다. 가끔씩 딸 귀여운 짓 하는 걸 고대로 따라 하는 ‘큰놈’을, 남편과 나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강아지 따라 하는 망아지에 비유해서 ‘아유, 저 망!’ 하고 놀리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그 소리를 듣더니, ‘나보고 망아지라고 그러는 거지? 나도 다 알아’ 하는 게 아닌가. 너무도 놀랐다. 아니 그럼 얘가 지금까지 우리 말을 다 알아듣고 있었다는 얘긴가. 지금은 다 커서 애들 아빠가 되어 있으니까 이젠 이해해 주겠지. 큰 아이라고 예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작은 게 좀 더 귀여워 보였을 뿐이었다는 걸. 낮 말 밤 말을 쥐나 새만 듣는 게 아니라 애들도 다 듣고, 더욱이 그 뜻까지 다 알아채고 있을지도 모르니, 무릇 부모된 사람들, 조심하시라!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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