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기적거리며 늦잠을 자느라 짐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할 수 없다 수영은 제낄 수 밖에… 그러나 핫텁에 몸을 담그고 스팀 룸에 들어가 땀을 빼는 것은 결코 빼먹을 수 없다. 몸무게가 슬금슬금, 흥부가 박을 타는 것도 아니고, 도로 늘어나니 걱정이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아니다. 아무래도 요즘 다시 맛을 들인 한국음식 때문이다. 매운 라면, J 제당의 야채 덥?V… 떡, 쌀과자 등.. 탄수화물 폭탄을 추수감사절 연휴내내 여행하며 맘껏 즐긴 탓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장자 집안이지만 오늘날 한국을 먹여 살리다 시피 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적통을 3남인 (고) 이건희 회장에게 넘기고 일찌감치 식품과 영화사업 쪽으로 주력사업의 방향을 전환해 미국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J 그룹을 생각하면 필부에 불과한 나지만 큰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올해도 불과 보름정도 남은 시점에 돌아보니 지갑도 이정도면 두둑하고… 한해를 큰 걱정없이 마무리 할 수 있게 됐으면 들떠서 아무한테나 시덥잖은 말도 걸고 ‘동지 섣달 꽃본 듯이, 날좀 보소’ 콧노래라도 흥얼거려야 옳을텐데 왜 이리 푸욱 가라 앉았나 모른다. 변덕인지, 도대체가 감사를 모르는 건지? ‘아따따거워….’ 파우더 룸에서 알코올 성분의 애프터 셰이브 로숀을 얼굴에 팍팍 바르고 거울을 비춰보니 100키로에 육박하는 거한이 떡 버티고 서있다. 7-8분만에 간편하게 염색이 된대서 이름도 그렇게 지은 한국 염색약이 정말 좋긴 한데 머리카락이 어느새 회색으로 변하는 걸 보니 착색 지속기간은 좀 짧은가 보다. 풀사이드 K 스쿼트 20회, 푸시업 20회로 단련된, 스판덱스 천의 하얀 반팔 운동복을 입은 거울 속의 남자는 튿어질 듯 긴장감이 감도는 팽팽한 상체를 가슴 양편의 작은 두 꼭지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쇼핑객들이 들떠서 오가는 백화점 거리에서 들어야 할러데이 분위기가 물씬 나는 크리스 마스 캐럴인데 이게 웬일. ‘오미크론’이란 듣도 보도 못한 그리스 숫자의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해 또다시 많은 나라가 국경을 폐쇄한다는 소식에 가려져 연말 분위기는 완전히 빛이 바랬다.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해 한평생을 찌지고 볶으며 가족애를 나누며 정겹게 살아온 한국의 두 누이를 초대해 캘리포니아와 라스베가스 등을 구경시켜 드리려 했던 계획을 한달정도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동기간, 친지들을 매년 불러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삶은 우리에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지나온 세월 한 가족으로 태어나 애환을 함께 했거나, 사회에서 우연한 기회에 소중하게 연결돼 인생의 큰 의미를 나누게 된 귀한 인연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내가 새로운 사업을 추가 한다고 했을 때 제 일착으로 비지니스를 주려고 연락해 주신 분들, 한국일보에 게재된 내 수필을 읽고 진솔한 감상을 카톡이나 문자로 보내 주신 독자님들, 그리고 자신의 인생과 관련한 내밀한 속 사정을 공유를 해 준 분들 등등.. 가만히 세어 보니 한두분이 아니다.
지난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팬데믹에 찌든 1년여만에 모처럼 엘에이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같은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수많은 귀성 차량들이 간선도로를 벗어난 이면 도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꽉 들어차 산호세 남쪽 길로이에서 5번 인터스테잇 프리웨이까지 연결해 주는 104 마일의 152번 파체코 패스 산복도로를 지나는 데에만도 3시간이 족히 걸렸다. 지겹다기 보다는 2002년 1월 한국을 떠나 처음 닿아 2달 살은 미국의 첫 고향 엘에이를 향하는 귀성 운전길에 나는 아이처럼 살짝 설레기 까지 했던 것이다.
도착한 다음날 모처럼 시간이 서로 맞은 지인분과 점심을 함께 한 나는 이게 웬일? 작은며느리가 될 아가를 생전 처음만나 아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정말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가정의 딸이지만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참한 규수였다. 새옹지마가 새씨 할아버지 이야기 인지, 중국 변방의 말키우던 영감의 전화위복 이야기인지 사자성어 까지는 깊이 모르면 어떤가. 미국서 사는데.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나 사랑을 키워왔고 한달전에는 한인타운의 새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는데 너무 너무 잘된 일이다.. 제짝을 못찾아 한숨만 푹푹 쉬는 수많은 외로운 영혼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할 때 이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디 있을까. 2019년 완공됐다는 호텔 풍의 모던한 한인타운의 아파트는 잘 갖춰진 시설과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었다. 내년이면 집도 사고 결혼도 하겠다니 비로소 인생의 큰 물줄기를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둘다 상대를 나와 CPA 자격증을 갖고 준수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앞으로 행복하게 마음을 맞춰 살 일만 남았다. 그리고 또 땡스기빙 연휴에 불쑥 내려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지인들을 불러내 놀아 달라고 조르는 만행(?)을 저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인생이 만나고 싶은,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루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피스 팍과 남가주 최고봉 마운트 볼디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교외에서 가진 이틀에 걸친 솔로 하이킹으로 나는 모처럼 만의 남가주 여행중 건강도 함께 다질 수 있었다. 이렇게 도둑(?) 나들이를 하고 말없이 샌프란으로 돌아 오면서 가졌던 저간의 마음의 짐도 덜고 서로간의 안부도 확인할 겸 이번에는 작심하고 필승 공군 제 78기 사관후보생 동기 전우 2명을 불러내 토랜스의 ‘삼삼오오’라는 한국식 선술집에서 만나 오랜 회포도 풀었다. 제대후 35년만에 처음, 엘에이서 20년전에 만났던 두 친구들이다. 어찌나 빠른 세월인지 벗어진 머리나 늘어난 주름살로 쏜 화살이 시공을 헤치고 날라온 흔적이 모두에게 뚝뚝 묻어났다.
올 한해 팬데믹 난리통 속에 스스로를 잘 건사해 낸 모든 독자님들께 올해의 마지막 주말 수필로 저무는 한해 세모의 인사를 정중하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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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