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미사 강론 중, 지옥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지옥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배신한 자들이 있다는 것과 지독한 고통 중에 예전의 행복을 기억하게 하는 것 등이었다. 희망이 있다면, 예전의 행복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고통을 견딜 힘이 있겠지만, 지옥에는 희망이 없기에 행복했던 기억조차 고통이라는 얘기다.
우리 가족이 이민 올 때, 아들아이의 나이는 만 13세였다. 낯선 곳에 와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힘들 터인데,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어 왔으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적응을 하나 싶더니 얼마 후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빼먹고 어디에선가 방황하다 들어온 아이를 야단칠 요량으로 방문을 열었더니, 침대에 엎드려 울음을 숨기려는 듯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그래도 아빠와 좋았던 시간, 가정 형편이 넉넉해 누렸던 일들이 있었지 않냐는 말이 나왔다. 내 딴에는 그러한 추억이 위로가 됐으면 했다. 그런데, 아들은 그래서 더 힘들다고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나는, 그래서 왜 더 힘들다는 건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말을 지금껏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주일미사 강론을 듣다가 퍼즐 맞추는 것처럼 아들이 말한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들은 지옥에 있었던 게다. 아빠에게 배신당하고, 희망 따위는 없어 보이고, 그러니 예전의 좋았던 추억이란 건 고통을 더해줄 뿐이어서 내게 그런 외마디 소리를 냈던 것이다. 내가 미루어 짐작한 그런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었다는 것을 어미라는 사람이 이제야 미련하게 깨달았다.
타인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가끔 따뜻한 손편지라도 써주며 타인의 고통을 다독여주기도 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미가 자식의 고통을 그리도 짐작하지 못했다니, 그리곤 방황하는 아이에게 좋은 말만 늘어놓았다는 것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와 한몸이었던 자식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니 내가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미루어 짐작해서, 또 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이해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고통과는 무게가 다를 터이니, 안다고 섣불리 말하지도 말고, 성급한 결론으로 마무리 짓지도 말고, 언젠가 이해가 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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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 (교회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