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언어를 보면서 웃다가 손 끝으로 느끼는 노래에 눈물이 흐르고 만다. 애플TV플러스에서 방영 중인 ‘코다’(CODA)가 그런 영화다. 청각장애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Child of Deaf Adult)를 지칭하는 CODA인 루비가 버클리 음대 진학을 꿈꾸면서 부딪히는 가족간의 갈등을 ‘보이는 언어’와 ‘만져지는 음악’으로 그린 수작이다. 아는 사람들만 눈치챌 영어의 머리글자로 만든 단어를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명백하다. 이 영화를 통해 CODA의 의미가 사람들의 심장에 각인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다.
주인공 루비는 청각 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청력의 소실이 없다. 음성언어보다 수어(Sign Language)를 먼저 익혀 어렸을 때부터 수어를 통해 부모와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다보니 청각 장애인(농인) 문화와 일반인(청인) 문화에 모두 익숙해 청각 장애인의 통역사 역할을 한다.
먼저 태어난 오빠가 농인이어서 둘째로 태어난 루비가 청력 테스트를 받는 동안 어머니는 딸이 ‘청각 장애인’이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고백한다. 행여나 딸이 자라면서 가족간의 소통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길까봐 아이에게 청각 장애가 있기를 원했다는 어머니의 심정은 짐작조차 못하리라. 그러나 루비는 청인으로 태어났고 청각장애인 가족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 커간다.
CODA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 감독상, 앙상블 연기상을 휩쓸어 역대 최대 수상작이 된 영화다. 선댄스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넷플릭스, 아마존, 서치라잇, 애플 배급사들이 치열한 배급권 쟁탈전을 벌였고 2500만 달러를 지불한 애플의 품에 안겼다. 루비의 부모인 프랭크와 재키 로시 부부와 오빠 레오 역은 실제 청각장애인으로 연기 활동을 하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19세의 배우 에밀리아 존스가 너무나 열정적으로 수어에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루비를 연기한다.
9개월 동안 수어를 배웠고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과 수어로 소통하려 노력했다는 에밀리아 존스의 보이는 언어는 그녀의 손에 온통 신경을 집중시키게 만든다. 딸이 부르는 노래를 너무도 알고 싶은 아버지가 딸의 목(울림통)을 만지며 촉각으로 소리를 인식하고, 버클리 음대 오디션에서 잔뜩 긴장한 그녀가 느닷없이 2층 객석에 난입한 청각장애인 부모와 오빠를 발견하고 수어로 노래하는 장면들에서 “의사소통의 매체로서 수어는 감정적인 언어”라는 그녀의 표현에 납득이 간다.
3명의 청각장애인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는 클로즈업 장면이 없다. 표정을 클로즈업해 보여주기엔 손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해서다. 딸의 남자 사람친구에게 콘돔 사용법을 수어로 알려줄 만큼 화통한 아버지 프랭크는 청인들 사이에서도 리더 역할을 한다. 프랭크의 눈에는 여전히 너무 섹시해서 하루라도 안아 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아름다운 어머니 재키 역을 연기한 50대 중반의 말리 매틀린은 매사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영화 ‘Children of a Lesser God’으로 198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18개월이 되던 해에 청각이 거의 소실되었다. 그렇지만 청각장애로 인해 인생에서 망설임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단다.
하퍼스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한 전업 배우인 그녀는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는 일을 항상 거부해왔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녀의 수어는 더 없이 차고 넘친다. 오빠 레오를 연기한 대니얼 두란트는 8학년 때 농아학교로 옮겼고 연기를 전공했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웃 영화계에서 캐스팅 A리스트인 그는 SNS를 통해 청각장애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행동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자신을 배우이고 미국수어(ASL) 아티스트이자 옹호자라고 소개하며 “ASL이 우리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고 주창한다.
청각장애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다는 것, 이런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들의 연기를 더욱 빛내주는 건 음악이다. ‘라라랜드’ ‘물랑 루즈’ 등의 음악감독이었던 마리우스 드 브리스가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다. 에밀리아 존스가 부르는 ‘Beyond the Shore’가 내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라 보이는 언어로 노래하는 그녀를 시상식 무대에서 만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영화를 보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에 달해 찌푸린 얼굴이 도무지 펴지지 않던 지난해 뉴스에 등장해 온 몸으로 소통하던 수어 통역자 덕분에 웃었던 기억이 났다. 대사의 40%가 수어로 진행되는 영화 ‘CODA’는 침묵의 순간에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티격태격하는 가족의 일상을 지켜보는 행복이 있고 딸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장애가 있는 아버지의 보이는 사랑에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 모임이 잦아지는 연말이다.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차마 말로 못해도 속이 다 내보이는 가족이 되도록 노력하자.
<
하은선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