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2021-12-07 (화)
장아라(첼리스트)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한 묘비에 적혀 있다는 글귀이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와 탁 박혔다. ‘우물쭈물’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늘 불안했다. 성격상 대충은 안되어서 제대로 하던가 아예 안하던가를 반복하는 삶을 살다보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예 안하던가’를 택하는 일이 빈번해진 까닭이다.
언젠가는 해야지 하는 인생의 계획은 아직도 리스트가 길다. 이런 것들이다. 나는 언젠가 스페인을 가보고 싶다. 나의 어머니는 은퇴 후 여행을 자주 다니셨는데 내후년에는 꼭 스페인을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고 결국 가지를 못하셨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그 스페인을 내가 가서 느껴보고 싶다. 어머니가 기대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또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 어릴 적 읽었던 수많은 위인전 속 위인들에게서 내가 찾은 공통점은 그들에게 신실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보다도 특히 그런 어머니들이 눈에 띈 것은 내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런 건 내가 언젠가 할 수 있지’라며 나의 인생 계획 리스트에 담아두었다. 나의 신앙의 목적이 자식 출세에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언젠가 성지순례도 가보고 싶다. 여지껏 준비가 안되어서 미루어 오고 있다. 나는 좀더 사전 지식을 챙겨가서 가는 곳마다 오롯이 감동을 느껴보고 싶으나 아직 그럴 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내 자신에게 박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 외에도 집안에 유례없는 비즈니스도 해보고 싶고 책을 써보고도 싶다.
나는 몇 년 전 뇌경색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병마를 떠나 건강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의사의 무시무시한 선고를 받고 몸과 마음이 무너져가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크게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게 ‘언젠가’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나의 삶은 좀 바뀌었다. 나는 언젠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가급적 하고 있고 모호했던 계획들도 현실화하고 있다. 백세시대가 꼭 내 얘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멋지게 노년을 설계할 일이 아니라 당장 행복하고 당장 많이 사랑하고 당장 웃고 웃기며 오늘을 살자는 게 나의 주된 생각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에 적혀 있다는 저 글귀는 사실 오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살 수 있었던 내게는 귀한 조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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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라(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