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쯤, 중국의 우한에 사는 41세의 회계사는 몸이 편치 않았다. 뽑지 않은 유치 때문이라는 생각에 치과치료를 받았다. 그리고는 1주일 쯤 지난 12월 16일, 그에게는 치아와 전혀 상관없는 증상들이 나타났다. 열이 나고 숨이 차며 가슴이 조여드는 듯 했다. 그가 바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목한 최초의 코비드-19 환자이다.
그 즈음 우한의 화난 수산시장 주변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수산물과 야생동물을 파는 이 시장의 해산물 노점상, 배달원 등 시장과 관련된 사람들이 폐렴 비슷한 증상으로 줄줄이 입원을 했다. 그리고 12월 26일 우한 보건당국은 시장 배달원의 폐 조직에서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였다.
남아공의 안젤리크 코치 의사협회장은 지난달 18일부터 좀 특이한 환자들을 보았다. 첫 환자는 33세의 남성. 그 며칠 극도로 피곤하다며 찾아온 남성은 약간의 두통과 몸살기운이 있을 뿐 기침 등 델타변이 감염 증상은 없었다. 하지만 코비드 검사 결과는 양성. 이후 여러 환자들이 같은 증상을 보이면서 코비드의 최신 변종, 오미크론이 발견되었다.
“멀고 낯선 우한의 회계사나 화난시장의 노점상, 혹은 남아공의 30대 남성이 열이 나고 몸이 좀 아픈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라고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생선 비린내 동물 냄새 그득했을 그 시장에 등장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불과 2개월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제까지 523만 명(미국 77만7천명)을 죽게 했다. 지난달 24일 남아공에서 처음 확인된 오미크론 변종은 일주일 만에 미국 한국 등 20여 개국에서 보란 듯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코비드가 이제는 수그러드나보다’ ‘내년이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겠지’ 하던 기대는 무너지고 세계는 다시 긴장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빗장을 걸어 잠그고, 해외 여행객들의 입국요건을 강화하며, 부스터샷 접종을 강권하고, 그러는 사이 증시는 연일 요동치고 있다. 다시 찾아든 불확실성 - 불안이라는 유령이 스멀거린다.
백신 보급된 지 1년. 접종 예약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두어 시간 줄을 선 후에야 주사를 맞던 때가 아득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백신/부스터 샷을 맞을 정도로 백신이 흔해졌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라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부유한 국가들에는 백신이 넘쳐나고 가난한 국가들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현실, 백신불평등이 오미크론 같은 변이들을 만들어낸다고 과학자들은 전부터 경고해왔다.
11월 중순 기준, 고소득 및 소득 중상위 국가들에서는 1회 이상 접종자가 해당 인구의 73%에 달한다. 반면 소득 중하위 국가들의 경우 41%, 저소득 국가들에서는 달랑 5%가 백신을 맞았다. 이들 미접종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바이러스 감염은 계속되고, 변이가 거듭되면서 전염성 더 강하고 더 치명적인 변이의 출현으로 기존 백신의 효과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경고였다. 모두가 백신을 맞지 않는 한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백신 불평등 문제는 일찍이 예견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지난해 4월 코백스(COVID-19 Vaccines Global Access, COVAX)가 만들어졌다. 세계백신 면역연합, WHO, 유니세프 등이 주도해 전 세계 백신을 공동 구매/분배하자는 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이다.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지금쯤 팬데믹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을 좋은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부유국들의 이기주의가 걸림돌이 되었다. 선진국들은 자국민에게 빨리 확실하게 백신을 보급하기 위해 코백스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제약사들과 거래했다. 이들 국가가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해 백신 사재기를 하니 코백스를 통해 저소득 국가들에게 갈 백신은 남아나지 않았다. 11월 중순 IMF 집계에 따르면 코백스가 계약한 백신의 13%, 선진국들이 기부를 약속한 백신의 12%만이 각국에 공급되었다.
아프리카의 낮은 접종률은 공급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열악한 운송시스템과 의료시스템으로 백신을 제때 소화하기가 어렵다. 지난여름 콩고 당국은 코백스가 보낸 백신 전량을 되돌려 보냈다. 유효기간 만료 이전까지 백신을 접종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아울러 문제가 되는 것은 백신에 대한 불신. 아프리카인들은 서구에서 보내는 의약품을 선뜻 믿지 못한다. 과거 백인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의학 실험을 한 어두운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은 세계를 복잡계로 해석한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이라는 저서에서 모든 현상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썼다. 모든 생명체는 촘촘히 짜인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어서 서로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나비의 날갯짓은 어딘가에 폭풍을 일으킨다. 나비효과이다. 중국 우한에서 기침을 하니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팬데믹이 주는 교훈 혹은 경고가 있다.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촘촘한 그물망 저편에 충격이 가해지면 이 편이라고 안전할 수 없다. 선진국들은 백신 접종률 낮은 국가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겠다. 서약한 백신 기부도 제때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가진 자의 선심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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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