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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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겨울에 내리는 비

2021-12-02 (목)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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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겨울에 내리는 비가 신기했다. 그리고 비 온 날에 처음 맡아보는 냄새도 신기했다. 게다가 보이는 산들이 온통 초록으로 물든 이 겨울에 다시 세상이 살아나는 듯한 한국의 봄 같은 주위가 너무나 신기했다. 겨울에 생각지도 못한 예쁜 꽃들이 길거리에 가득한 것도 신기하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한국에서의 겨울은 너무 추워서 비는 생각도 못하고 눈이 오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건데 이곳에 온 첫해에 비가 오는 걸 보고 정말 우리가 다른 곳에 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한국의 여름날에도 본 적이 없는 시야를 온통 가리며 쏟아져 내리는 비를 뚫고 운전해야 하는 경험도 했다. 차 앞유리의 와이퍼가 부러져버릴 듯 움직여서 이러다 정말 부러지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밀려왔었다. 그렇게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리는 날이 나는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엄청나게 큰 가로수가 도로를 가로질러 부러져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큰 나무가 부러져 쓰러지는지도 신기했다. 어느새 달려온 경찰들이 도로를 수습하느라 수신호로 차량을 정리하는 모습은 언젠가 뉴스에서 본 듯했고, 마치 태풍이 지나간 후의 흔적을 보는 듯했다. 조심스레 운전해 집으로 들어온 나는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주저앉아 한동안 울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오는 몇 일동안은 나도 모르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곳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힘들기도 했었다. 곁에 내 아이들이 셋이나 있어도 이날은 괜스레 더 힘들었던 듯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다시 왔다. 올해는 비가 얼마나 올 지 이제는 신기하다는 생각보다 기다려질 정도로 나는 익숙해졌다. 마음이 힘들었던 일들도 이제는 다 지난 오래전 기억으로 남았고 이젠 언제 비가 오려나 기다려지게 되었다. 난 사실 비 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비를 맞아 신발이 젖는 게 너무 싫어서인데 몇 년 전부터는 장화도 준비해 놓고 비를 맞이하고 있다.

바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 한편 바다 건너에 내가 살았던 곳을 그리워하며 울다 오곤 했던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 앞 바다에 자주 간다. 올해는 한번도 비가 오는 바다를 본 적이 없어서 겨울 비 내리는 날에 그 바다에 가 보려고 한다.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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