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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칼럼] 위헌법률 심판권의 시원

2021-11-30 (화)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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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법률심판권이란 의회에서 만든 법률이 상위법인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연방대법원이 심사하는 권한을 일컫는 것으로, 대법원에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법은 즉시 효력을 상실하는 게 법리이다.

최근 연방대법원은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텍사스 주의 ‘심장박동법’과 총기휴대의 필요성을 입증해야만 허가증을 발급해주는 뉴욕 주의 ‘총기휴대법’이 수정헌법 제2조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구두변론을 마치고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법을 만들고,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사법부인 대법원이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고 헌법에 명문화하였으면 좋았으나 사법부의 역할을 규정해놓은 연방헌법 제3조 어디에도 이런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연방대법원이 오늘날 위헌법률심판권의 주체로 자리잡은 것은 건국초기 마버리 대 매디슨(Marbury v. Madison) 사건이 그 시원이다. 1800년에 실시된 제3대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연방정부의 개입을 우선시하는 연방주의자였던 현직 대통령 존 애덤스는 주와 개인의 주권을 중시하는 반연방주의자 부통령 토머스 제퍼슨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어 의회권력까지 넘겨주게 된 애덤스는 남아있는 사법부만이라도 제퍼슨 행정부의 반 연방정책을 견제해달라는 요량으로 퇴임 전 정권이양 과도기를 틈타 16명의 순회판사와 42명의 치안판사를 무더기로 임명했는데 이게 사단이 되었다.

당시 각국의 외교관뿐 아니라 판사 임명장 전달 책임도 국무장관에 속해있었는데 국무장관이었던 법률가 존 마셜이 선거에 패배한 애덤스로부터 대법원장으로 긴급 임명을 받고 급히 짐을 싸느라 ‘윌리엄 마버리’(William Marbury)를 포함한 4명의 치안판사들까지 미처 임명장을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1801년 3월4일 임기를 시작한 제퍼슨 행정부의 신임 국무장관 제임스 매디슨은 임명장을 받지 못한 이들 4명에 대한 임명무효를 주장하였고, 이를 수긍하지 못한 마버리는 ‘연방대법원이 하급법원으로 하여금 국무장관에게 임명장을 전달해줄 것을 명령할 수 있다’는 1789년 제정된 법원조직법 제13조를 인용, 하급심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법원에다 소장을 접수했다.

마버리로부터 소장을 받은 대법원장 존 마셜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봉착했다. 임명장을 교부하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제퍼슨과 매디슨은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판결을 무시할 게 뻔한데 그렇게 되면 사법부는 무력한 판결을 내리는 식물기관으로 전락할 것이고, 그렇다고 신임 대통령 제퍼슨 편을 드는 경우에는 사법부가 행정부 시녀임을 자처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마셜은 “대통령의 공직 임명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대통령이나 행정부 각 기관 장들이 자신의 재량권 안에서 인사권을 행사한 경우에는 정치적으로만 평가될 수 있으나, 판사 임명과 같이 법령에 의거,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국회가 동의한 경우라면 대통령이 임의로 이를 취소할 수 없어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문의 서두를 채워나갔다.

이같은 법리에 따라 마버리가 제때 판사 임명장을 받지 못한 것은 국무장관의 실책이라고 지적하였다. 아울러 헌법에 규정된 연방대법원 재판권의 범위는 연방 지방법원과 주의 1심을 거쳐 올라온 항소심 사건에 국한되기 때문에 의회가 1789년, 1심의 재판권을 바로 대법원에 부여하도록 제정한 법원조직법 제13조는 위헌이라 삭제되어야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재판권이 없는 대법원이 하급법원에 임명장 전달명령을 내릴 수도 없다고 마무리 지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의회가 만든 국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면 대법원이 무효화할 수 있다고 공언함으로써 자연스레 사법부의 위헌법률심판권을 확보한 것이다.

솔로몬 뺨치는 마셜의 이 명판결 하나로 사법부가 행정부에 예속되는 것을 막고, 의회의 입법 횡포도 견제함으로써 오늘날 사법부 우위의 미국식 삼권분립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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