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어느덧 10년
2021-11-25 (목)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지난주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된 주였다. 엊그제 면접을 본 듯한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이 되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난 광고를 보고 난생 처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면접을 보고 한달 후에 연락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그때 그 시간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일해 본 경험도 전무한 내게 일할 기회를 주신 선생님 부부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저런 일들로 온종일 머리가 복잡한 시기였는데 일을 하게 되면서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일이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경험도 없다 보니 일하는 시간 동안은 일에만 열심이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맡겨진 일도 별로 많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얼마 후부터는 이곳에 오시는 많은 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 사이좋은 부부들이 함께 오는 모습,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자녀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앞날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와 보살펴 드리지 못해 후회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어느 날 친정 어머니 예약시간에 맞춰오느라 새벽부터 2시간 넘게 운전하고 왔다는 다정한 딸의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엄마를 살뜰히 보살피는 딸의 모습에 그날은 감동이었던 날이었다. 그러나 모시고 온 엄마랑 마치 모르는 사람인 듯 따로 대기실에 있다가 겨우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가 모르는 사람들처럼 가버리던 안타까운 날도 있었다. 연세가 많은 남편분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애틋하게 보살피며 오셨던 날도 기억한다. 어느 날 백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가 손잡고 오셔서 진료실에서 혈압을 재는데 “당신 오늘은 혈압이 좋으네…” 하며 서로 밝은 웃음을 지어 나도 저절로 웃음지었던 날도 기억한다. 멋쟁이 할머니가 몇 년 후에는 치매 환자로 오셨던 날,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은 걸 깜빡 잊으셨는지 그 위에 털모자를 쓰고 오셨던 날도 마음 아픈 날로 기억한다. 몇 일 전에 다녀가셨던 늘 인상 좋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된 날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람사는 세상을 알아가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인생사의 지혜를 깨달아 간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셨던 아버지도 이렇듯 많은 사람들을 돌보다 가신 거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그리운 마음이 오늘도 가득하다.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