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토요일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79세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바로 전날인 19일, 취임 후 처음으로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5시간 동안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때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 마취를 해야 했던 바이든은 깨어날 때까지 대통령의 권력을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승계했다. 이날 오전 10시10분부터 11시35분까지 85분 동안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었다.
대통령이 건강검진을 하는 동안 권력이 잠시 승계된 일은 처음이 아니다. 조지 W. 부시(아들) 전 대통령이 2002년과 2007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때 두차례 딕 체니 부통령이 권한을 대행했고, 1985년 레이건 전 대통령이 대장암 수술을 했을 때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통령에게 권력을 승계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해리스 부통령은 최초의 여성이며 유색인종으로서 대통령 직무를 대행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셈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슈가 워싱턴 정가,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 심각한 고민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미역사상 ‘최고령’ 대통령과 ‘최초의 여성유색인’ 부통령에 대한 부담이 그것이다.
당장 2024년 대선이 걱정이다. 최근 재출마 의지를 밝힌 바이든은 그때가 되면 82세가 된다. 건강검진 결과 대통령 직무 수행에 적합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3년 후에는 어찌될지 알 수 없고, 공화당에서는 그의 인지능력을 검사하자며 끊임없이 건강 상태를 공격하고 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혼란 철군, 코로나 팬데믹 대응 실패, 엄청난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의구심이 끼어든다. 그녀는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순간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 될 것”이라는 유례없는 관심과 기대 속에 행정부에 입성했다. 최초의 여성유색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이기도 했고, 바이든이 워낙 노령이어서 ‘유사시’ 대통령 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차기대선에서 유력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취임 후 첫 두 달 동안 해리스는 바이든과 거의 모든 행보를 같이하며 존재감 있는 2인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존재감은 미미하다. LA 타임스가 지난 10개월의 부통령 일정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바이든과 해리스는 3월 이후 함께 하는 일정이 갈수록 눈에 띄게 줄었다. 대통령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이 실세의 척도라는 점에서, 또 대통령과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무게추의 변화다.
이를 눈치 챈 미국의 유수언론들은 지난달부터 “카말라 해리스는 지금 무얼하고 있나” “믿을 수 없게 사라져버린 부통령” 등의 제목을 단 기사와 칼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해리스 참모들 측에서 “어려운 일만 부통령에게 떠넘긴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해리스는 지난 3월 중남미 불법이민자 급등 문제를 해결하라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 문제는 누가 봐도 난제 중 난제였다. 또 하나의 어려운 임무는 ‘공화당의 투표권 제한시도를 막으라’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공화당 강성 주들에 막혀 방법을 찾기 힘든 어려운 문제다. 결국 해리스는 두 임무에서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흘러나온 것이 ‘백악관의 해리스 견제설’이다. 차기 대권구도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정치적 야심에 위기의식을 느낀 대통령의 참모들이 그녀를 옆으로 밀어내며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문이 계속 불어나자 지난 주 백악관은 “부통령은 대통령의 핵심 동반자”라며 진화에 나섰다. 해리스도 “우리가 함께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소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견제설을 일축했다.
백악관의 난기류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부통령이란 직책이 원래 그렇다는 의견이 그 하나다. 해리스가 시작부터 남다른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역대 부통령들은 스팟라잇에서 멀리 떨어진 채 대통령의 치어리더 역할에만 충실하곤 했다. 또 다른 해석은 부통령은 대통령의 조력자여야 하는데 의회 경험이 짧은 해리스는 조력자는커녕 수습생 같다는 불평이다. 마지막으로 해리스가 의도적으로 몸을 낮췄다는 분석이 있다. 신중하게 정치 커리어를 쌓아온 마이너리티 출신 정치인으로서 고령의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조금이라도 야망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임 첫해부터 부통령의 행보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은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최초의 흑인여성부통령의 탄생에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건 바이든 행정부는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차기 대선까지 아직도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바이든-해리스 호’가 돛과 닻을 재정비하고 순항해나갈 시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팬데믹과 인플레이션과 기후변화라는 악재 속에서 초대강국 미국을 이끌고 가는 두 사람에게 아직은 비판보다 격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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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