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정책 과제중 하나인 ‘인프라 예산법안’(infrastructure bill)이 공화당 하원의원 열 세 명의 찬성표를 끌어내며 의회를 통과했다. 별 것 아닌 듯 보일지 몰라도 공화당의 노골적이고 극단적인 당파성을 감안하면, 13명의 의원들이 바이든에게 큰 힘이 되어줄 대규모 예산법안 처리에 동참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도로와 다리 보수, 브로드밴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인프라 법안이 유권자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는 거듭된 여론조사 결과를 정치인들이 강하고 의식하고 있었고, 이처럼 인기가 높은 법안에 반대했다가 자칫 호된 정치적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경계심이 발동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만약 인프라 지출법안이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으로 간주될 만큼 중요하다면, 트럼프가 자신의 임기 중 이 법안의 처리를 강행하지 않은 이유가 무얼까?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6월 첫 ‘인프라 주간’을 선언하면서 기반시설 예산처리를 공언했지만 관련 입법안은 단 한건도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내?길 즈음 가시적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한 ‘인프라 주간’은 국민적 우스갯소리로 전락했다. 왜 그랬을까?
무능이 부분적 이유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금의 공화당은 미국의 미래에 투자할만한 합헌적 역량을 갖추지 못했거나, 현재의 행태로 보아 위헌적일만큼 무능력하다. 서글픈 일이지만 민주당 내부의 일부 친기업 성향 의원들을 중도주의자로 부르는 것 또한 온당치 않다. 그들은 공화당의 사고방식을 공유한다.
트럼프는 2016년 선거전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노후한 기반시설을 개선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보좌관들이 공개한 ‘플랜’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스케치에 불과했다. 물론 공공투자 계획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제시한 조잡한 플랜은 2017년에 시행된 ‘감세 및 고용촉진법’에 따라 만들어진 ‘기회특구’처럼 국고보조를 받는 민간투자를 통해 부유한 개발업자들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정실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본보기였다. 한마디로 트럼프 진영이 요란스레 떠벌린 기반시설 공약은 실효성이 전혀 없는 잠꼬대에 불과했다.
만약 트럼프가 진심으로 선거공약을 지키고 싶었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고. 최소한 이를 법안으로 엮어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과의 협치를 원치 않았고, 미치 매코널을 비롯한 공화당의 핵심 원내 인사들 역시 대형 인프라 투자에 한사코 반대했다.
공화당 원내 지도부가 인프라 투자안에 그처럼 심하게 반대한 이유가 무얼까? 표면적 이유는 추가지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은 증세, 특히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인상에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자금조달을 위한 정부의 추가 국채발행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적자정책의 출발점은 예산적자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소요예산을 충당할 아무런 조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1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감세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철강과 콘크리트 투자에 덧붙여 인적투자에 초점을 맞춘 바이든의 ‘더 나은 재건 플랜’에 난색을 표명한 한줌 남짓한 민주당 의원들은 표결을 미룬 채 의회예산국(CBO)에 비용평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반시설 예산안의 일부 재원 조달안이 불분명하다거나 CBO의 비용평가가 수천 억 달러의 추가 재정적자로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현재의 낮은 금리를 감안하면 재정적자를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들이 싫어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실행을 막기 위해 선택적으로 적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인들을 돌려세우지 못한다.
주류에 속한 공화당의원들은 군비를 제외한 모든 지출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그 이외의 지출은 ‘사회주의’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우파는 보통시민들을 지원하는 모든 형태의 예산지출을 ‘사회주의’로 규정한다.
사실, 보수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새 정부의 프로그램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 정부의 프로그램이 유권자들 사이에 성공적으로 인식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경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부의 역할 확대가 유용하다는 폭 넓은 공감대가 자리잡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는 정부의 프로그램이 사실상 미국을 ‘사회복지제도에 의존하는 자들의 나라’, 혹은 부유세 과세로 빈곤층 지원 예산을 충당하는 나라로 바꾸어놓을 것으로 우려한다.
이 같은 태도를 감안하면 트럼프가 인프라 지출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화당을 우회해 민주당과 협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과의 협치를 단연코 원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바이든의 재건 플랜을 좌초시킬지 모를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약간 온화한 방식이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공화당과 뜻을 같이한다. 그들은 국채발행을 통해서라도 인프라에 투자하기 원한다. 반면 인적투자가 (그들의 선거구민들은 물론)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출에 거부감을 보인다. 이유가 뭘까? 웨스트버지니아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인 조 맨친은 미국이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사회’가 될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이런 몰상식한 사고는 막대한 정치적, 인적 대가를 불러온다. 트럼프가 4년간 처리하지 못했던 인프라 예산법안의 의회통과를 이끌어낸 바이든의 개가는 이념주의자들과 정실자본주의자들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보여준 실물교육에 해당한다. 이제 민주당은 맡은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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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