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언제부터 부귀영화를 꿈꾸어 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구석기 시대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귀와 영화의 바탕인 부를 축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렵 채취로 먹을 것을 장만하던 시절에는 이를 장기 보관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러나 농경 시대로 접어들면서 곡물을 오래 쌓아두는 것이 가능해지고 청동기가 발명되면서 이를 든 집단이 돌맹이와 나무 막대기밖에 없는 집단을 복속시켜 대규모 영농이 일어나면서 잉여 농산물과 빈부격차가 발생했다. 잉여 농산물의 존재는 일부를 농사일에서 해방시켜 대장장이, 목수 등 기술직의 출현을 가능케 했고 이를 통한 기술의 발전은 부의 창출을 가속화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부의 창출은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 혁명 이전 부의 원천은 주로 농업이었고 농업으로 많은 부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군대를 조직해 남의 땅을 뺏는 것이었다. 땅 뺏는 것이 부를 얻는 첩경일 경우 부의 창출을 학문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 문제를 제일 먼저 깊이있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산업혁명의 진앙지 18세기 영국에 살던 아담 스미스였다. 그는 부의 원천을 분업에서 찾았다. 그는 대표작 ‘국부론’에서 10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핀을 만들면 하루에 10개에서 20개 정도 만들지만 이를 18개 공정으로 나눠 각자가 맡은 일을 하면 하루 4만8,0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업의 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핀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핀을 싸게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다면 그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유 무역의 중요성이다. 모든 나라가 문호를 열어 시장의 크기가 커질수록 분업의 심도는 강화되고 그에 따라 생산성은 향상되며 경제는 발전한다. 이 고전 경제학의 핵심적 통찰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핀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핀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내고 이를 18개 공정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분업도 가능한 것이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기관도 누군가 증기기관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흔히 18세기의 산업혁명을 20세기 정보혁명과 대비시켜 이야기하는데 알고 보면 산업혁명도 새로운 지식에 바탕을 둔 혁명이었다.
따지고 보면 농업혁명과 구석기 시대도 새로운 지식을 토대로 해 이뤄졌다. 농업혁명은 누군가 농사짓는 법을 알아내면서 일어났고 구석기 시대도 누군가 돌을 쪼개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고안해내면서 시작됐다. 300만년에 걸친 구석기 시대를 보통 하나로 묶어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도구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올두완부터 아슐리안, 무스테리안, 오리냐시안, 솔뤼트리안, 막달레니안 등 여러 시대로 나뉘어진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석기의 모양이 정교해지고 사냥의 효율도 증진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지식이 아니라 천연자원이 부의 원천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물건이 경제적으로 유용한가는 전적으로 인간의 지식에 달려 있다. 아무리 철광석과 구리 광석, 주석 광석이 널려 있어도 이를 제련해 철과 청동기로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없다면 그건 그냥 돌에 불과하다.
펜실베니아에 있는 타이터스빌은 미국 석유 산업의 발원지로 원유가 지표면에 그냥 흘러넘쳤다. 19세기 중반 이를 정유해 등유로 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땅 위에 흘러다니는 원유는 악취나는 오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정유 기술의 탄생과 함께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땅으로 돌변했고 한 때 인구당 백만장자가 미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 됐다.
실리콘도 마찬가지다. 산소 다음으로 지구 표면에 가장 흔한 원소인 실리콘은 누군가가 이를 반도체의 원료로 사용하는 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그냥 모래에 불과했다. 11월 15일은 반도체 혁명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인텔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 탄생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기간 동안 컴퓨터 칩의 계산 능력은 10억배 늘어났고 향후 20년 동안 이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국 증시에서 시가 총액 5위까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트(2조5,000억 달러), 애플(2조4,600억),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1조9,800억), 아마존(1조7,000억), 테슬라(1조) 모두 반도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부 창출의 원동력은 인간의 두뇌며 그 창의력을 육성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가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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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