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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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그리움으로 가득한 10월

2021-11-11 (목)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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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월이면 늘 마음이 아프고 깊은 그리움으로 시간을 보낸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리움으로 매일매일 마음을 다스리며 보내야 했다.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10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23년 전, 엄마는 20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난 아직도 어제 일처럼 슬프고 그리움이 크다.

두 분은 고향이 함경남도이고 같은 대학을 다니며 그 옛날 연애를 하셨다. 두 분이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엄마가 모아놓은 걸 어느 날 밤에 두 분이 꺼내 보는 장면을 나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캠퍼스 커플로 그렇게 연애했던 두 분이 6.25전쟁 후 1.4 후퇴로 각각 피난 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손위 누나와 같이, 엄마는 외할머니랑 외삼촌, 이모와 함께 피난 왔다. 아버지도 엄마도 다들 두 분의 아버지가 피난을 내려보냈다며 얼마 후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고 말씀했다.

그렇게 각각 피난 온 두 분은 아버지가 어떻게 연락을 들었는지 엄마가 피난 와 계신 곳으로 찾아가 만나고 얼마 후 결혼하셨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부터 다시 계속 의대 공부를 했다. 공부 중 막내로 낳은 내가 심장에 문제를 갖고 태어나자 아버지는 심장전문인 순환기 내과를 전공하셨다. 그리고 평생 내 주치의로 나를 지켜주셨다.


그러던 아버지는 내가 미국 오기 바로 전 해에 돌아가셨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늘 내 건강만을 걱정해주고 돌봐주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응급실을 찾았을 땐 아버지는 혼수상태였지만 내가 울며 아버지를 부르는 순간 온몸에 혈액순환이 되는 듯 피부색이 바뀌는 걸 내 눈으로 보았다. 내가 온 걸 아셨던 것 같지만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

그후 3년 후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다. “저 몇 일 전에 엄마랑 통화했어요 아니에요!”라고 정말 어이없는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만 두고 갈 수도 없었고 비자문제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얼마동안 혼자 울며 지냈고 엄마가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한테 몇 달동안 전화를 했었다.

두 분은 남달리 큰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던 분들이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께 늘 걱정인 딸이었다. 단 1분만이라도 두 분을 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했어요 늘 걱정인 딸이어서 정말 죄송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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