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19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전두환 미화발언’의 여파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발언 자체가 드러낸 윤석열 전 총장의 위험한 역사인식과 함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다 여론에 눌려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듯한 태도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그에 대한 비판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여기에다 국민을 조롱하듯 자신의 애완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버젓이 SNS에 올린 몰인식은 기름을 부었다.
‘전두환 망언’과 이후 그가 보인 태도는 그동안의 자질부족론과는 차원이 다른 우려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릇된 역사인식과 함께 정치인, 특히 국가지도자의 기본자질이라 할 수 있는 성찰과 공감능력의 부재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실시되고 있는 야당 최종후보 결정을 위한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윤 전 총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구테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흘린 피를 밞고 권력을 찬탈해 공포정치로 일관한 독재자에게 “정치를 잘했다”고 하는 그의 인식에 많은 국민들이 경악했다. “히틀러나 이완용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라”는 비판까지 나왔을 정도다.
흔히 한 인물이나 시대를 평가할 때 공과 과를 함께 봐야 한다고들 말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모든 인물이나 시대는 다면적인 만큼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합리성을 지니려면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주장의 참뜻이 “공과 과를 같은 무게로(equivalent), 즉 기계적 중립의 관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돼야 한다.
전두환 비판에 소환된 이름인 이완용의 경우를 한편 살펴보자. 이완용 평전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가 한때 독립협회에 몸을 담기도 하고 의무교육 제도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많이들 놀란다. 그래서 그를 일부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려 들기도 한다.
하지만 189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조선에서의 지배권을 장악한 후 이완용이 보인 행적은 이것이 얼마나 균형을 상실한 관점인지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을사조약, 고종퇴위, 정미7조약,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그는 중요한 역사적 국면마다 ‘소신 있게’ 대세를 관철시키고 이권을 팔아 넘겼다. 일제의 조선강점 전략의 가장 충실한 현지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는 조선민족에게 고통을 안겨준 대가로 더할 수 없는 세속적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정말 당시 세계정세 속에서 불가피했던 선택이었다면 그는 부귀영화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공과론’을 내세워 평가한다면 그것은 이완용이 만든 나라에서 가진 것 모두를 던져버린 채 투쟁하고 희생한 독립지사들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사회에서 뉴라이트 학자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에서 이뤄진 개발로 인해 조선인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인프라 측면에서 개발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는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일본인들은 맹렬한 속도로 조선의 토지를 장악해 갔고 광공업 자원은 거의 전부 일본인 소유가 됐다. 조선 내에서의 개발은 맞지만 조선을 위한 개발은 아니었다. 얼마나 수탈과 불평등이 심했으면 해방만이 이런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식민지 근대화론은 극우의 궤변일 뿐이다. 일제의 압제로 우리 민족이 치러야 했던 희생과 고통은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공과 과를 같은 무게로 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는 그래서 지극히 위험하다. 특히 역사 앞에 저지른 죄과의 경우 더욱 그렇다. 역사 앞에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놓고 그에게 약간의 공이 있으니 나라에 기여한 바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민족의 정기뿐 아니라 역사의 정의라는 관점에서 옳지 않다. “전두환이 그래도 정치는 잘했다”는 윤석렬의 주장은 그가 만든 시스템에 의해 고통 받고 인권을 유린당했던 희생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윤 전 총장의 ‘전두환 망언’을 접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궤변을 떠올린 것은 두 주장의 논리 구조가 판박이어서이다. 그러고 보니 윤 전 총장의 부친인 윤기중 명예교수가 뉴라이트연합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던 인사라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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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