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의 직장인들은 대부분 박봉이었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 봤자 손에 들어오는 것은 얄팍한 월급봉투였다. 현금으로 봉급을 받던 시절, 월급봉투를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귀가하다 버스에서 날치기 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장인들은 매일 아침 즐겁게 출근했다. 일은 고되고 월급은 적었지만 직장에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동료들과의 정이었다. 아무리 힘든 하루를 보내도 퇴근 후 동료들과 둘러앉아 술 한 잔 나누며 이런 저런 불만을 토로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곤 했다. 끈끈한 동료애 덕분에 직장 다니는 맛이 났고, 그래서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할 기회가 있어도 대개는 떠나지 않았다.
한번 입사하면 평생 한 직장에 몸담는 게 당연시 되던 때였다. 직장의 동료들은 말 그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수십년을 함께 지내며 가족 이상으로 가까웠다.
팬데믹 이후 미국의 직장인들이 대거 퇴직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미 전국에서는 430만명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연방 노동통계국은 발표했다. 노동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면서 구인난이 심각해지자 근로자들의 어깨에는 힘이 실렸다. 직장 그만 두어도 갈 데가 많으니 나은 조건이 있으면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진다.
직장인들이 왜 이렇게 대거 퇴사하는 걸까를 두고 많은 분석이 있다. 적은 보수, 마음에 들지 않는 업무, 강압적인 사내 분위기, 융통성 없는 근무일정, 열악한 근무환경 등 많은 요인들이 지적되었다. 지난 8월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의 55%는 앞으로 12개월 내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볼 생각이다. 대규모 사퇴 물결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라는 말이 된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기업들은 능력 있는 직원들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쉽게 떠나게 하는가. 최근 맥킨지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맥킨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퇴사하는 이유는 보수 때문도, 워라벨 즉 일과 삶의 밸런스 때문도 아니다. 정신건강 문제도 아니다.
이들이 떠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없다는 것이다. 직장이 ‘내 삶의 터전’이라거나 동료가 ‘가족’이라거나 하는 공동체 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 조직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직장 안에서 외톨이 같은 느낌으로 지낸 직원이라면 떠나는 건 시간문제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장의 결속을 유지하는 비결은 정이다. 애사심과 동료애이다. 그런데 만약 경영진이 회사 이익 챙기느라 직원들 복지에는 관심도 없고, 상사가 자기 실적 앞세우느라 부하직원들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직원들에게 애사심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동료애도 깊어지기 어렵다. 저마다 언제 회사를 그만둘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게 된다.
‘대 사퇴’의 시기에 고용주들은 사내 공동체 의식 제고에 힘쓰라고 노사문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직원들이 소외된 느낌을 갖지 않고 ‘한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 친한 동료가 있을 경우, 다른 데서 더 많은 보수를 제안해 와도 이직하지 않을 확률이 10배는 높다.
직장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벌러 가는 곳이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 동료와 동료가 서로 이끌어 주고 챙겨주는 끈끈한 정이 있다면 사실 보수가 좀 적어도 참을 만하다. 직장 다니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