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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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과 2020년의 차이

2021-11-0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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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촉발된 ‘대불황’은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 도산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미 주식은 그 한 해 전인 2007년 가을부터 하락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때부터 서브프라임으로 불리는 불량 모기지 채권 미상환으로 인한 손실이 늘어나면서 금융 기관들의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먼 파산은 이런 악성 채무가 쌓이고 쌓이다 터진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다른 금융 회사들도 비슷한 처지였기에 리먼 하나가 무너지자 연쇄 도산 사태가 벌어지며 세계 금융 시장이 얼어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FRB) 의장인 벤 버냉키가 대공황 전문가라 그 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돈을 푸는 바람에 제2의 대공황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불황’으로 불리는 이 경기 침체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다.


불황이 공식적으로 끝난 후에도 오랜 동안 사람들은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살았다. ‘대불황’의 근본 원인인 불량 모기지 채권이 정리되고 모기지 심사 기준을 강화해 제대로 된 크레딧 기록과 수입이 있는 사람만 집을 살 수 있게 돼 주택 시장이 정상을 찾은 201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미 경제는 비로소 다시 성장 가도를 걷게 됐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대확산으로 촉발된 세계 불황은 2008년과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당시 세계 경제는 순항중이었음에도 코로나 확산이 가속화되자 2020년 다우존스 산업지수는한 때 40% 폭락하고 2,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실업률은 3.5%에서 14.7%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된 것은 경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비즈니스 업소의 문을 닫게 했기 때문이다. 그 해 연말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경제 봉쇄가 풀리면서 경제는 급속도로 정상화됐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푼 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2020년 3월 트럼프가 2조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안에 서명한데 이어 바이든은 2021년 3월 1.9조 달러 규모의 부양안을 마련했다. FRB는 FRB대로 연방 기준 금리를 0%대로 내리고 지금도 매달 1,2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통해 돈을 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1조 달러의 인프라 개선 법안과 2조 달러로 예상되는 사회 복지 지원 법안이 시행될 전망이다. 미국이 생긴 이래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처럼 많은 돈이 풀린 예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풀린 돈은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며 주가와 부동산가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천문학적 돈이 풀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코로나 불황으로 직장을 떠난 직원들 중 상당수가 직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고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은 공장 재가동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컴퓨터 칩부터 화장지까지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가 하면 물동량이 급증하며 물류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돈은 넘치는데 일할 사람은 없고 물건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으며 그나마 만든 물건도 운송할 길이 막히자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한 동안 들어보지 못한 인플레란 단어다. 지난 9월 미 소비자 물가는 연율로 5.4% 상승했는데 이는 40년만에 최고치다. 연방 금융 당국은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조만간 정상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 조만간이 언제가 될 지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가는 밀튼 프리드먼이 말한대로 근본적으로 통화적 현상이다. 늘어난 재화의 양보다 더 많은 돈이 풀리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인플레의 원인이 나와 있으므로 이를 치유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돈의 양을 줄이면 된다. FRB도 11월 부터는 자산 매입 규모를 줄여 내년 중반 이를 완전 중단하고 2023년부터는 연방 금리도 인상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충분한가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은 월남전과 ‘위대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난과의 전쟁’을 동시에 벌이면서 그 재원을 돈을 푸는 것으로 마련했다. 그 결과는 70년대 두 자리 수 인플레였고 이는 결국 1980년 폴 볼커 FRB의장이 연방 금리를 20%까지 올리면서 겨우 잡혔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돈을 푸는 것은 경우에 따라 필요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인플레라는 독을 부르고 타이밍을 놓치면 이를 잡기 위해 고통스런 수준까지 금리가 오를 수 있다. 언제나 고 인플레와 고금리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이다. FRB는 돈 줄 잡기를 실기해 대다수 미국민들이 고통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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