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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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지나온 시간들

2021-10-28 (목)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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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이 세상 어디든 다 같으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아무 계획도 없이 왔다.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되던 중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이곳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영화의 장면들처럼 떠올리곤 한다.

9학년, 8학년, 그리고 2학년인 세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살게 된 지 20년이 조금 지났다. 그렇게 긴 시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독립하기만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둘째인 큰딸이 연년생인 오빠보다 먼저 재작년 이 즈음에 결혼을 하고 작년 겨울엔 내게 엄마 대신 할머니라는 새 이름을 갖게 해준 외손녀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첫째인 아들도 어려운 시간들을 잘 견디며 독립하고, 어느덧 막내까지도 나의 아무런 도움이 필요치 않은 온전한 독립을 다 하고 나니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어쩌면 모두의 그 독립을 그저 꿈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듯했다.

어느 날 아침에 운전하다 앞에 보이는 산에 걸쳐진 구름들을 보면서 문득 내가 구름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볼 수 있는 구름이었는데,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구름이었는데, 어디든 갈 수 있는 구름이었는데, 어떤 모습으로라도 변하는 구름이었는데, 어떻게든 흘러가는 구름이었는데 왜…그걸…모르는 척했었는지…내가 구름이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구름이어야 하는데, 가고픈 어디로든 가는 구름이어야 하는데, 무엇이든 그리며 흘러가는 구름이어야 하는데, 어떻게라도 떨치고 가는 구름이어야 하는데 왜…가지 못하고 아직도 이 자리에 있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아이들의 선택도 아닌 나의 선택으로 이곳에 와서 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속에서 함께 잘 견디며 성장했다. 나의 바람대로 각자의 자기 자리로 독립하게 된 세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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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씨는 이화여대 음악대학과 SAN JOSE CHRISTIAN COLLEGE를 졸업하고, TKFL(Teaching Korean as Foreign Language) MASTER 과정을 수료했으며, 재미한국학교 북가주협의회 소속 교사로 12년 근속해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현재 닥터 오피스에서 의료기록(Medical Records)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이정미(전 빛의나라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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