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인한 10월

2021-10-23 (토)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작게 크게
학계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10월은 잔인한 달이다. 15주를 한 학기의 기준으로 삼는 많은 대학에서 그 중간이 10월이기에, 교직원들은 다음 학기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 여러 공문 작성 및 시스템 점검을 하곤 한다. 많은 학생들은 중간 고사와 함께 과제를 제출하고, 그에 대한 평가도 받게 된다. 교수들은 밀려오는 과제와 시험을 대비해 수업과 학생들 면담에 더 신경을 쓰고, 그들이 제출한 것들을 채점하는 동시에, 그 와중에 본업인 연구도 함께 해 나가야 하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나 역시나 마찬가지로 밀린 일들을 겨우 해치우며 집에 돌아와 두통약을 먹고 잠시 숨을 고르며 저녁식사 후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 때의 휴식이라면, 10월의 휴식은 그 잠깐의 숨 고르기 마저도 저녁을 먹으며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10월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잔인한 달이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중간 고사 후 성적이 너무 좋지 않거나, 따라가기에 벅차다고 생각해 중간에 그만 두기로 결정한 많은 학생들이 10월을 기점으로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그 이면에는 스트레스 및 정신 건강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떻게 해결할 지 몰라 그 이유로 더 고통스러워 하는 학생들도 많다. 대학이란 고등학교 때까지 경험해왔던 교육방식과 많이 다르고, 한번도 해본 적 없던 일들을 어른인 마냥 독립적이고 완벽하게 해내기를 요구 받는 것도 대학이기에, 소위 말하는 “멘탈이 털린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나 내가 있는 학교에는 학업에 있어 남들보다 더 많은 제약과 충돌을 경험해야 하는 저소득층의 유색인종 그룹의 학생들이 많기에 그들을 지도하고 격려하는 것은 내가 꽤나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10월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10월이 반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팬데믹으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피로는 말할 것도 없이, 그로 인해 생겨난 많은 문제들로 모두가 예민해진 상태이다.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피곤한 표정과 함께 생기 없는 목소리로 겨우 겨우 수업을 따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항상 이 맘 때 쯤이면 하는 중간 강의 평가에서도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 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가족을 잃고도 상실감도 잠시 그냥 수업으로 돌아와야 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무력감을 표출했던 학생부터, 견디기 힘든 지금의 시간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으로 힘겨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팬데믹 시작과 함께 우울감이 더 심해져 우울증으로 발전해 침대에서 나오기 힘들다는 학생, 생계를 위한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일터에서 인력난으로 더 바빠져서 힘들다는 이 등등, 괜찮냐는 격려조차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나에게 물어봐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상황이 좋지 않아 수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도, 나에게는 오히려 학생들이 나를 위로해 주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아 더더욱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 초, 많은 뉴스 미디어들이 미국 전역에서 증가하는 학생들의 자살 사건들을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의 끝이 보일 듯 말듯 했던 지난 수 개월 여간, 학생들의 정신건강의 문제는 학교를 열면 해결이 되는 문제인양 치부되어 이렇다 할 정책이나 해결방안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두 건의 학생 자살 사건이 있었다. 우리 학생들이 사라지고 있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그저 스스로 이겨내야할 것이 아니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팬데믹 이전에도 존재해왔고, 팬데믹으로 비롯해 많은 문제가 대두되는 지금부터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지도 모른다. 물론, 학교에눈 심리 치료 및 상담과 함께 각종 지원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 역시 지원이 부족해 도움이 필요할 때 신속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지원받기에는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학생들과 그들을 케어 하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무엇보다도 정신건강의 문제는 건강의 문제이다. 우리가 몸이 건강하지 못할 때 전문의를 찾는 것처럼,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때 의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 들이고, 누구나 그 기회를 쉽게 접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그렇게 10월이 약간 덜 잔인한 달이 되어가길 바란다.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