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이혼 전 부인이던 앰버 허드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한 자니 뎁(오른쪽).
영화 배우 자니 뎁··················································································································
스페인의 산세바스찬 영화제(제 69회)가 주는 도노스티아(Donostia)상의 올해 수상자로 자니 뎁(58)이 선정돼 지난 9월 22일 쿠르살 강당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도노스티아 상은 영화계에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생애업적 상으로 과거 수상자들로는 그레고리 펙, 더스틴 호프만 및 메릴 스티립 등이 있다. 뎁은 지난 2017년 배우인 아내 앰버 허드와 이혼한 뒤 허드로 부터 결혼생활 동안 뎁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 한 이후 할리우드로부터 기피인물이 되다시피 했다. 다음은 뎁이 시상식에서 가진 기자회견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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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사람들이 사회 전산망에 의해 떠도는 뉴스만 보고 사실의 진위여부도 모르면서 당신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에 대해 멋대로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로 인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된 내 경우가 도대체 언제까지 갈 것인지 배우 복잡한 상황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오염된 공기에 지나지 않는 낭설에 의해 순식간에 그릇된 판단을 받았다. 참으로 황당무계하고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누구도 나 같은 피해에서 안전할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당신에 대해 한 문장으로 낭설을 퍼뜨리고자 한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나 저 문 밖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런 낭설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모면치 못할 것이다. 마치 내가 밟고 있던 카펫을 갑자기 누군가가 빼내버린 기분이다. 이런 일은 비록 나뿐만이 아니다. 많은 여자와 남자와 그리고 아이들마저 각종 불쾌한 일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한 동안 그런 불쾌한 일에 시달리다 보면 마치 그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주 유감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무장한다면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떤 터무니없는 판단을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거나 믿는 사람에 대해 불의가 일어날 경우 가만 앉아 있지 말고 일어서야 한다.”
-지금 젊은 자니 뎁을 만난다면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는지.
“뒤로 걸으라고 충고 할 것이다.”
-무엇에 근거해 역을 고르는가.
“나는 언제나 본능과 직관에 의존해왔다. 각본을 처음 읽을 때 주인공에 대해 갖는 첫 감정과 함께 그로부터 점화되는 아이디어의 불꽃에 따라 결정한다. 보통 각본을 15페이지 이상 읽게 되면 역을 맡기로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게 그 인물은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내가 그와 연결되면 역을 맡기로 한다. 이와 함께 내가 주인공에 대해 각본에 있는 것 외에도 나만의 독특한 그 무엇을 첨가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더욱 좋다. 여하튼 나의 마음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과거에 만든 몇 편의 영화들을 보면‘아이고 머니나’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스튜디오가 날 해고 안 한 것이 이상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난 자신을 행운아로 생각한다.”
-‘카리브 해의 해적’의 해적 선장 잭 스패로 역이 다시 주어진다면 그 역을 어떻게 해내겠는가.
“내가 잭 역을 맡아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것이야말로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나는 지금도 늘 잭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이 잭을 필요로 하고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난 지금도 그 사람들을 찾아가 잭을 연기한다. 잭의 모습을 하고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찾아가 축하한다. 특히 병상에 누워있는 아이들을 찾아가 위로할 때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잠시나마 병을 잊고 깔깔대고 웃는 것을 보면 큰 기쁨을 느낀다. 내게 있어 잭 스패로 선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 누구도 내게서 잭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그야 말로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다시 한 번 말 하건대 그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여러 장르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하기가 편안한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무성영화가 아주 중요했다. 그 때 공영TV 방송국에서는 무성영화의 천재들인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그리고 론 체이니 시니어 등의 영화들을 방영했었다. 그 후 조금 크고 나니 흑백 공포영화들인‘프랑켄 스타인’과‘드라큘라’ 및‘울프맨’ 등이 이들을 대체했다. 그래서 난 늘 공포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다. 팀 버튼 감독과 내가 처음으로 만났을 때 우리를 연결시켜준 것도 이들 공포영화 때문이었다. 나는 분장 뒤에 숨어 자신의 중력과 무게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공포영화 장르를 사랑한다. 짙은 분장으로 자기 모습을 바꾸다 보면 내 자신의 유명세로부터 스스로를 멀리 할 수 있어 좋다. 분장과 극 중 인물 뒤 에 숨는 것이 실제의 내 자신을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 카메라 앞에서 허구의 인물이 되는 것이 보다 편한 나는 어딘가 잘 못된 점이 있는가보다.”
-수상자로서 오늘 누구를 기억하고 싶은지.
“먼저 끊임없이 나를 지원해준 영화제다. 시장으로부터 영화제의 모든 관계자들이 너무나 오래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나에 대한 근거 없는 개념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염려가 된다.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해주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영화만 만들 뿐이지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 영화제에 과거 네 차례 정도 참석했는데 이 곳이야 말로 내가 사랑하고 또 존경하는 곳이다. 이 영화제는 스타들이 대거 참석해 요란을 떠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영화와 영화인들에 관한 진짜 영화제다. 그런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니 가슴이 메어지도록 감동할 뿐이다. 상이란 때론 경쟁을 필요로 하는데 나는 아직도 이 경쟁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할 뿐이다. 어쩌면 실수로 날 수상자로 선정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지극한 명예로 겸손하게 받아들이겠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찾아오겠다.”
-오랜 경력을 지닌 배우로서 작은 예술영화와 블록버스터에 두루 나온 당신은 할리우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배우 생활 30여년에 걸쳐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면서 할리우드 게임에 대해 배운 것은 반드시 그들의 게임을 할 필요는 없으며 그 게임으로부터 숨고 피하고 다이빙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할리우드는 확실히 과거의 그 것과 다르다. 스튜디오 체제는 불평과 불만투성이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것을 찾아 먹겠다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나처럼 언제나 제거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스튜디오들은 과거와 달리 거대 규모의 회사들인데 영화 제작에 협조하고 참여해온 내가 보기엔 창작성보다 틀에 박힌 공식에 집착하고 있다. 스튜디오들이 만드는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플롯을 매 20분마다 알려주는 식인데 이는 관객의 수준을 기이할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짓이다. 관객들은 스튜디오들이 내놓는 영화들을 볼 수밖에 없긴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오래 동안 사람들이 집에서 두문불출 하면서 TV를 통해 자기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얼마든지 골라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스튜디오영화 외에도 좋은 볼 영화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로 인해 할리우드의 영화사들도 자기들의 결점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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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