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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어둡다고들 했던 영화가 돌아오고 있다”

2023-06-09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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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팬데믹으로 어둡다고들 했던 영화가 돌아오고 있다”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지난 5월 16일 개막해 27일까지 진행된 2023년도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62)를 영상 인터뷰 했다. 프레모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와 함께 영화복원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올 칸영화제 개막작품은 여류감독 마이웬이 제작·연출과 각본, 주연까지 겸한 전기영화‘잔 뒤바리(Jeanne du Barry)’. 이 영화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애인 마담 뒤바리와 왕과의 관계를 그린 것으로, 자니 뎁이 루이 15세로 나온다. 올해 영화제 심사위원장은‘슬픔의 삼각형’ 등으로 두 차례나 황금종려상을 탄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다. 칸에서 인터뷰에 응한 프레모는 악센트가 있는 영어 발음을 구사하면서 활기차고 자상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팬데믹으로 어둡다고들 했던 영화가 돌아오고 있다”

영화제 개막작인 자니 뎁 주연의 ‘잔 뒤바리’.


-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제가 몇 년간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작년에 비로소 활기를 되찾았다. 올 영화제가 작년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팬데믹으로 인해 그동안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온 작년 영화제는 대성공이었다. 올 영화제에도 팬데믹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에 참석할 것으로 본다. 영화제 출품을 신청한 사람들 중 1,000명에게 탈락 통보를 보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올 영화제는 작년과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그는 올해 칸영화제의 특징으로‘영화가 되살아났다’는 점을 꼽으면서 이같이 설명했다. “그동안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을 안 가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인기를 모으면서 영화의 앞날이 어둡다고들 했는데 이와 같은 예측과는 달리 영화가 되돌아오고 있다. 올해 더더욱 기억할 만한 것은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업체가 협력해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파라마운트와 애플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한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이다. 이렇게 영화사와 스트리밍 업체가 협력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 면에서 칸영화제에서 이런 영화가 선보인다는 것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 심사위원장으로 본래 여성을 선출하기로 했다가 남성을 뽑은 이유가 뭔가.


“작년 9월부터 선출 작업에 들어가 4~5명의 여성 영화인들을 접촉했지만 요즘 웬만한 영화인들은 모두 영화를 만드느라 바빠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년에는 여성 위원장을 뽑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올 영화제 경쟁 부문에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많은데.

“그렇다. 모두 7명으로, 그 어느 해보다 많다. 그러나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다. 영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영화계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올해 여성 감독의 작품이 경쟁 부문에 7편이나 올랐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작품을 고를 때 작품의 질이 같다면 남성 감독과 여성 감독의 작품을 놓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느 것을 고를까 망설이다가 여성 감독의 것을 고를 것이다. 또 작품의 질이 같은 프랑스 영화와 세네갈 영화를 놓고서도 균형 문제로 망설이게 되면 결국 세네갈 영화를 고를 것이다.”

- 출품작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내 아이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라는 질문이나 마찬가지다. 출품작 모두가 다 마음에 든다. 올해 특징 중 하나는 젊은 감독과 노련한 감독의 작품이 골고루 선을 보인다는 점이다. 신예 감독과 마틴 스코세이지와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작품이 한 장소에서 함께 선을 보인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돌아왔다는 것도 대단한 뉴스다. 또 난니 모레티와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도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 작품과 같은 종류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영화제는 감독 특유의 성질을 고수하는 작품과 함께 새 예술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고루 보여주고 있다.”

- 중요한 영화인들이 출품한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 선택을 거절할 때 어떻게 하는가.

“잘 알고 친구같이 지내는 프랑스 감독의 영화를 거절하기란 힘든 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를 거절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들에게 보내는 탈락 통보 편지 말미에 ‘우리는 언젠가 함께 되돌아올 것입니다’라고 쓴다. 그들에게 각자의 영화가 선출되지 않은 이유를 알릴 때는 사실대로 그 이유를 알린다. 문제는 영화가 칸영화제 특성에 맞느냐 여부다. 내가 좋아하지만 영화제 특성에 맞지 않으면 탈락시킬 수밖에 없다. 칸영화제는 비평가들을 비롯해 까다로운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 많은 영화제다. 이런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을 고른다.”


-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출품작은 어떻게 고르는가.

“작년에 그 부문의 관계자들을 대폭 바꾸었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본래 유전인자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다. 이 부문은 결코 영화제의 2등 부문이 아니다. 젊은 영화인들, 젊은 10대들이 만드는 예술성 강한 작품, 즉 과격한 새 형태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부문이다. 올해는 출품작을 20편에서 15편으로 줄이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20편이 나왔다. 국제적 영화인들의 훌륭한 작품들인데 칠레 영화가 처음으로 선을 보인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은 특정 감독의 첫 작품이 모이는 주요한 수원지이다.”

- 자신의 돈으로 표를 사서 본 첫 영화를 기억하는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이다. 나는 이 영화를 지금도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있다. 영화를 본 것은 내가 10살 때였는데 사실 이 영화는 14살 미만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내 돈으로 표를 샀더니 입장을 시켜줬다. 부모가 준 용돈으로 표를 샀는데, 내가 표를 사 혼자서 본 첫 영화가 이 서부영화다.”

- 영화제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2001년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질르 자콥 밑에서 일하기 위해 칸에 왔다. 그리고 2007년에 총 매니저가 되었다. 기억에 특히 남는 것은 내 첫 레드카펫 경험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 루즈’에 나온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레드카펫 위를 걷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또 다른 것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갱스 오브 뉴욕’ 중 20분가량을 관객에게 보여주었을 때였다. 그때 마티와 함께 무대에 섰던 것이 기억에 길이 남는다. 매니저가 무대에 서는 일은 칸영화제에선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마티는 그날 자기 영화 홍보보다 1개월 전에 사망한 빌리 와일더 감독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와 함께 유튜브가 주최한 해변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보노와 10m 떨어져 지켜본 일도 좋은 추억거리다.”

-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영화와 TV 작가 노조의 파업이 진행 중인데 이것이 칸영화제에 어떤 영향이라도 미치고 있는가.

“그 이슈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우린 지금 은퇴연령 상향문제를 놓고 우리대로 스트라이크를 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파업이 우리 영화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한다. 할리우드의 영화계는 8년 또는 10년마다 파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안다. 내가 할리우드의 파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다.”

- 최근 전 아내인 배우 앰버 허드로부터 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해 재판에 회부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자니 뎁이 주연하는 ‘잔 뒤바리’가 개막작으로 선정됐는데 이 영화제에 여러 번 참석한 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린 그 영화에서 뎁과 함께 일한 것에 대해 아주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 영화는 완벽한 개막 작품이다. 그는 루이 15세 역을 아주 잘해냈다. 프랑스 사람 모습인데다 프랑스 악센트를 아주 잘 구사하고 있다. 10점 만점에 9점이다. 내가 그를 잘 기억하는 것은 칸이 아니라 오래전에 그와 함께 참석한 세르비아영화제 때의 경험이다. 한 10여년 전쯤의 일로 지금도 그와 함께 보낸 며칠간의 경험이 기억에 살아 있다. 세상에서 자니 뎁과 전 아내 간의 재판에 대해 전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단 하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내게는 관심이 전혀 없는 일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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