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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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오징어 등뼈

2021-10-18 (월) 최정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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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은 냉동 오징어는 흐물흐물 했다.
흐물흐물한 오징어의
더 흐물흐물한 내장은 꺼내 버렸다.
그런 다음
질기고 질긴 투명한 등뼈를 뽑아냈다.
오징어의 척추를 뽑아냈다.

그래놓고 완성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놓고 그날에야
오징어를 삶아먹으면서야 알았다.
누구라도 나를 공격하고
내 등뼈를 뽑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등뼈가 뽑히는 고통,
나는 사람이 싫다.
내 등뼈를 뽑으려고 하는, 아프게 하는
그런 사람이 싫다.

물오징어의 질긴 등뼈를 뽑으며
앗 차, 흐물흐물한 물오징어를 잊었었다.
등뼈가 뽑히는 그를 잊었었다.
내가 그를 외면하고 싶었었다.
그것은 물오징어 일뿐이라고
그런 내 속마음이 투명하게 보였다.
내가 오징어 등뼈를 뽑아내고 있었다.

<최정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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