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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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2021-10-06 (수)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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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에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란 말이 나온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서 착안한 법칙이다. 작가는 이 법칙을 유목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의 조상들이 정착화하는데 필요했던 동물의 가축화와 식물의 작물화에 적용했다. 수많은 야생식물이 작물화 되려면 기후와 토지, 수자원, 효용성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경작할 가치가 있는 작물이 되고, 수많은 야생 포유류가 가축화 되려면 고기, 유제품, 운송 수단, 가죽, 털,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가축화할 효용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법칙은 인생의 많은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안나가 얘기했듯,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 애정,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수적인 이 요소들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에서 성공을 하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성공한다.

나는 행복한가 자문해본다. 처음 LA에 도착한 후 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주재원으로 먼저 나와 있던 사촌오빠에게 전화를 했었다. “결혼하니까 행복하지”라던 오빠의 물음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는 상황에 떠밀려 결혼을 하고, 한달만에 원형탈모증에 시달릴 정도로 환경이 달라져서, 내게 결혼이란 참고 견뎌야 할 과정이라 생각되던 터였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 첫 크리스마스 파티 때 일이다. 남편이 마련한 아내에 대한 선물 증정식이 있었다. 많은 부부들 중 가장 신혼이었던 내 선물의 부피가 제일 컸다. 개봉 결과 스카프, 향수, 액세서리 등이 주류였던 다른 아내들의 선물에 비해 산만큼 컸던 내 선물은 그 당시 유행하던 식품 선물 세트였다. 참치 통조림도 들어있던 그 상자를 받고 어처구니가 없어 울었다. 이후의 생활은 계속 그 연장선이었다. 내가 왜 실망을 했었는지 아마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남편과 삼십년도 넘게 동행하고 있다.
이제, 숱이 많은 편이었던 내 머리는 오랜 세월동안 새로 자라는 머리카락보다 빠지는 갯수가 훨씬 많아 얄팍하게 변해 있다. 과연 행복한가!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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