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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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는 길

2021-10-02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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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식구 모두 한국에 나왔다. 코로나로 인해 미뤄왔던 한국행을 큰맘 먹고 감행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방문하려고 했는데 이제 코로나 완전 종식을 기다리기엔 너무 먼 미래가 된 것 같아 부랴부랴 준비해 나왔다.

친족방문으로 자가격리 면제서를 받았다. 서류 준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혼인신고에 딸아이 출생신고, 딸과 남편 여권 발급 등으로 서너 달을 소요했다. 영사관을 네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 최근에 생긴 K-ETA도 발급 받느라 반나절을 잡아먹었다. 탑승 전 72시간 전에 발급받아야 하는 PCR 테스트 결과 수령에도 애를 먹었다. 혹시 몰라 두 군데를 예약해서 코를 두 번씩이나 이틀 연속으로 찔렀는데 첫 번째 테스트지는 이름이 잘못 나와 결국 쓰지 못했고 두 번째 받았던 결과지를 제출하고서야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결과지가 제시간에 나오지 않을까봐 메일함을 얼마나 많이 새로고침 했는지 모른다.

짐 싸는 데도 고민이 많았다. 아기와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라 아기 먹을 것부터 입힐 것까지 챙길 것이 많았다. 내 몸만 움직이는 것이면 금방 쌌을 텐데 아이 하나 생겼다고 짐 챙기는 것도 큰일이 되었다.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무방비 상태로 비행기에 태우는 게 걱정이 되어 이 주 전부터 마스크 쓰기 연습도 꾸준히 시켰다. 아직도 제대로 마스크를 쓰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보다 쓰고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고 있다.


공항과 비행기는 한산한 편이었다. 비행기 세 좌석 중 가운데는 모두 비어진 상태였다. 승무원들은 마스크에, 고글, 방호복까지 입고 비행 내내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 아이가 비행 중 심심하지 않게 장난감도 챙겨 주고 간식도 주어 조금 편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아이는 비행시간 중 대부분을 잘 잤고 서류도 빠짐없이 준비한 덕에 수속도 금방 마칠 수 있었다. 어린아이 동반자라 일반인들보다 더 빨리 나갈 수 있게 배려도 해주었다.

짐을 찾아 게이트를 빠져나가니 새벽부터 딸아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중 나와 계셨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놓지 못하셨다. 핸드폰 화면 속에서 계속 보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라 그런지 아이는 낯을 가리지 않고 가서 폭 안긴다. 입이 귀에 걸리신 시부모님 얼굴을 뵈니 한국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자가격리 면제자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외출금지다. 하루 만에 받아본 결과에서 음성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바깥 외출이 허용되었다. 입국 일주일 뒤 한번 더 검사를 받아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철저한 방역 체계를 접하니 몸은 고되지만 한국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한국은 바야흐로 가을이다.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며칠 비가 오더니 오늘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어딜 가도 들려오는 익숙한 한국말 소리들과 밤늦게까지도 영업하는 가게와 식당들, 맛난 배달음식과 길거리 음식을 접하니 정말 한국에 왔음을 실감한다.

좋아하는 계절에 고향에 돌아오니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신다. 고생스러운 준비과정과 아기와 12시간의 지난한 비행의 어려움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다.

남은 기간 동안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 하루하루 아이의 눈에 아름다운 가을 옷을 입은 한국의 모습을 담아야겠다. 처음 엄마의 나라, 한국을 찾은 아이에게 이번 여행이 포근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늘 한국이 그렇듯이 말이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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