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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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버릴 때 얻는 것

2021-09-11 (토)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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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탑, 줌, 수업자료 파워포인트, 그다음 공유. 교탁 데스크탑 켜고, 줌 로그인, 아 또 어느 컴퓨터에 채팅창을 띄워야 하더라? 오늘은 녹화하는 거 까먹으면 안 될 텐데. 학생에게 부탁할까? 좀 다시 알려달라고?” 9시 45분. 오늘의 첫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걸어가는 길, 내가 요즘 주문처럼 중얼중얼하는 말들이다. 그렇게나 그려왔던 강의실로 돌아간 시간이지만, 가슴 벅찬 마음과 함께 걱정과 짜증이 앞서온다. 이번 학기부터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델타 변종의 확산세가 만만치가 않기에, 당분간 하이플렉스(HyFlex)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갑작스레 결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이플렉스는 온라인과 대면 수업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수업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강의실에 오지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처음 2주 동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강의실 내 있는 인원을 줄이라는 대학 측의 공문이 내려온 이후, 학생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내가 내리게 된 결정이었다.

루틴을 다 외우기도 전에, 강의실에 도착, 이제 루틴을 실행할 차례이다. 내 개인 랩탑을 꺼내 학교 이메일로 연동된 아이디로 줌에 접속하고, 수업 자료들을 화면에 띄운다. 화면 공유를 한 뒤, 한쪽에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비디오 화면을 띄워 놓고, 학생들이 남긴 질문이나 코멘트를 즉시 확인 할 수 있도록 그 옆에 채팅창을 따로 띄워 놓는다. 와이파이가 불안정할 때가 있기에 이 과정은 제일 먼저 해놓아야 한다. 그다음, 교탁에 설치된 데스크탑에 다른 아이디로 줌에 로그인한다.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학생들과 같은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복잡하지만, 그중에 제일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강의실로 한둘씩 연이어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주말은 잘 보냈어요? 오늘 기분은 어때요?” 하며 서로 일상을 주고받는 사이 채팅창에도 인사말이 뜨기 시작하는 걸 보고 교탁에 달린 웹캠을 향해 돌아서 인사를 한다. “어서 와요, 좋은 아침이네요!”

이후 출석 체크 및 줌 수업 녹화 등등 수업을 시작하기 전 준비하는 루틴이 두세 단계는 더 있다. 가끔은 학생들과 대화 하느라, 녹화하는 것을 잊기도 하고, 와이파이에 먹통이라 수업을 늦게 시작하기도 한다. 루틴이 꼬이면 어디를 보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누가 나 허둥거리는 것 카메라로 찍고 있어요? 나중에 심심할 때 보면 되게 웃길 것 같은데.”


첫 주를 보내고, 하이플렉스 옵션을 내가 잘 감당해내고 있는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허겁지겁 수업을 시작한 날은 수업 내내 마음이 편치 않고, 말도 잘 나오지 않을 때가 많기에, 더더욱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냥 온라인으로 다 만나는 방식이 나에겐 덜 수고스러웠기에 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번째주, 학생들에게서 들은 피드백은 사뭇 달랐다. 개개인의 사정과 스케줄에 맞게 수업 참여 방식을 선택할 수 있기에 본인들은 하이플렉스에 대해 불만은커녕, 감사해하고 있었다. 교통체증과 장거리 운전이 흔한 휴스턴에서 학교에 올 때면 운전에 걸리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의실로 돌아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수업을 하는 것이 학생들의 배움에 최선의 방식이라고 확신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걱정들과 그에서 파생한 여러 가지의 확신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온라인 수업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 팬데믹으로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 등등은 우리가 가진 엇나간 확신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수업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가 낯선 공간을 편안하고 즐거운 관계로 채워 나갈 수 있도록 여러가지 지원과 시도가 먼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팬데믹으로 배움의 기회를 잃은 것이 아니라, 팬데믹으로 삶과 건강, 다른이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배움을 얻은 학생들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듯 확신을 버릴 때, 조금 더 다른 생각을 수용하고 다른 관점으로 매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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