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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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하루

2021-08-21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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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섯 시 반, 아이가 먼저 일어나 인기척을 내며 나를 깨운다. 부은 얼굴로 코를 찡긋 거리며 내게 웃어 보이는 딸을 보니 잠은 오래 못 잤지만 피곤함이 싹 가신다.

세수도 하지 못한 채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아침 공기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길 건너 커피숍까지 가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스콘을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달콤한 스콘을 한 입 베어 먹는데 이게 뭐라고 참 행복해진다. 이전처럼 팬시한 카페에서 마시는 고메 커피도 아니고 옷차림과 분위기도 영 아니지만 나를 보며 예쁘게 웃는 아이와 이렇게 나와 아침을 열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기쁘다. 오늘은 아침부터 커피로 수혈을 했으니 아이와 더 재밌고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하루가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 아이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아이 밥 때에 맞춰 먹을 것을 준비한다. 아이가 잠시 낮잠을 잔 사이에 끼니를 해결하고 밀린 집안일을 해치운다. 볼 일을 보다가도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모든 일을 내려놓고 달려가 아이에게 집중한다. 아이에게 온 신경이 가 있다 보니 어떤 때에는 아이가 우는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오후가 다 돼서야 겨우 세수를 하기도 하고 아이는 꼬박꼬박 씻겨도 나는 씻을 겨를도 없이 지쳐 잠드는 나날도 있다.


삼시세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나면 늦저녁 한두 시간이 있을까 말까 한데 내일 또 일찍 일어나 아이와 놀아 주려면 내 시간은 포기하고 일찍 자는 게 좋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했다. 그러다 보니 내 개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예전처럼 영화관에 가서 혼자 영화도 보고 싶고 소설책에 빠져서 밤새 책도 읽고 싶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서 예쁘게 상차림 해 먹고 싶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 나중으로 모두 미뤄두기로 한다.
아이를 하도 안고 업어서 어깨와 허리가 쑤신다. 밥을 제때 챙겨 먹지 못하고 큰맘 먹고 외식을 하더라도 아이 때문에 허겁지겁 먹다 보니 자주 체한다. 한 번 체하면 사흘을 내리 구토에 시달리는 나는 그럴 때마다 내 몸 아픈 것보다 내가 아파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진다. 아이를 안을 힘도 없어 안아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워지는 날이었다. 딸을 위해서라도 이 엄마가 더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다. 벌써 아이와 처음 만난 계절이 코 앞에 다가왔다. 아이와 사계절을 함께 보낸 셈이다. 지난 일 년간 이 작은 인간과 함께 울고 웃으며 아기도 훌쩍 컸고 나도 많이 성장했다.

한 생명을 보살피고 키우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전에 없던 인간애라는 것이 다 생겼다. 얄미운 친구도, 불친절한 식당 점원도, 시끄러운 이웃도 모두 그들 부모들이 고생 고생해서 키운 인간들이라는 생각에 싫은 마음보다 애틋한 마음이 더 든다. 내 아이가 귀하듯 저들도 모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라는 생각에 화날 일도 참아지고 저마다의 사정이 이해가 간다. 내가 이렇게 말랑한 사람이 아닌데 아기 하나 키우며 보살이 다 되었나 보다.

“아가야 엄마가 널 키우는지 알았는데 너도 엄마를 키우고 있구나.” 아이가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방긋 웃어 보인다. 내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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