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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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사랑이겠지요

2021-08-10 (화)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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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여러 좋은 이유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다. 까다로운 입국 절차에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지정된 방역 택시에 올라탔는데, 나이가 지긋한 기사님이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참, 삶이라는 게 뭘까요?” 가장 짧게 할 수 있는 대답이 뭘까 생각하는데, 기다리다 못한 기사님이 방역 비닐 넘어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순자예요, 순자. 요것이 작년부터 우리 기사 휴게소에서 살았는데 글쎄 얼마 전에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은 거 아니겠어요. 내가 왜 이놈 집사가 됐냐면요, 휴게소에 그 많은 택시 기사 중에, 글쎄 순자가 머리로 내 다리를 탁탁 치면서 애교를 그렇게 부립디다. 사실 얘가 이전에도 임신했다가 실패를 했거든요. 그런데 몇 달 만에 또 씩씩하게 임신을 해와서는 아비랑 어미를 골고루 닮은 새끼를 낳았어요. 내가 터널도 만들어주고 공도 갖다줬더니, 아주 신나게 놀아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그렇게 재미있어요.”

마치 뛰어노는 고양이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 기사님은 크게 한번 웃고 대화를 이어갔다.


“순자가요,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어미가 되고 나니까 싹 바뀌면서 자기희생을 하데요. 여덟 마리가 모유를 전부 빼먹으니까 등골이 다 보일 정도로 살이 빠지는 거예요. 나 같으면 아프니까 저리 가라 할 텐데 순자는 그걸 또 참고 제 새끼들을 제일 먼저 챙겨요. 근데 요놈들이 쑥쑥 크니까요, 기사들이 예쁜 애부터 하나씩 키우겠다고 데리고 갔어요. 계속 거기 놔둘 수가 없잖아요. 마지막 한 마리까지 데려가니까 순자가 글쎄 나를 원망하면서 밤새 울더라고요. 그래도 며칠 식음 전폐하더니 이놈이 또 금방 힘을 내서 나한테 애교도 부리고, 밥도 먹기 시작했어요. 아주 기특하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순자가 주인을 잘 만나서 참 복이 많은 고양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기사님은 대화를 멈추고 한참을 운전하다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제가 엊그제 사돈댁하고 산으로 자가용 타고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갔다가 오니까 누가 신고를 해서 순이를 데려갔다는 거예요. 인사도 못 하게 하고 어찌 그렇게 데려갑니까. 어디로 갔는지만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살아는 있어야 할 텐데.”

기사님의 그 순수한 마음에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마음이 아련해졌다. 참, 삶은 무엇일까요.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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