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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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동거

2021-08-02 (월) 김희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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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실버타운 좀 알아봤는데, 엄마가 갈 만한 괜찮은 곳 찾았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엄마, 삼개월만에 엄마 보는 거 이번이 처음이에요. 한국에서 엄마 혼자 살다니? 절대 안돼요.” 아들은 남매 중 막내라 그런지 정이 많고 눈물도 많다. 생각해보니 대학도 집에서 시간 반 거리에 있었기에 한달에 한두 번은 꼭 만났고, 졸업 후 직장도 신혼집도 인근 도시에 있어서 항상 내 주변에 살고 있었다. “애들이 둘이나 있는 아빤데 울기는…” 아들의 등을 토닥이는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마 내가 잘 할게요. 같이 살아요. 손자들 재롱도 보고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역국이랑 멸치볶음도 엄마가 해주면 좋잖아요.” 스피치를 곧잘 하더니 설득력있게 말도 잘한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거나 상황이 변하면 그때 다시 실버타운은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아들네 식구와 함께 살기로 했다.

입 가진 사람마다 결혼한 자식과의 동거는 반대한다. 나도 그랬다. 딸과 함께 살면 부엌데기 되기에 십상이고 아들과는 며느리와 잘 지낸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명하게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며느리는 심성이 착하고, 요즘 세대답게 아들은 부엌일을 같이 한다. 게다가 난 난장판 같은 집에서도 그럭저럭 잘 견딜 수 있다. 깔끔한 성격의 시어머니는 절대로 젊은 세대와 같이 살 수 없다. 장난감을 몇 번 치워봤지만 사내아이 둘은 순식간에 다 뒤집어놓는다. 냉장고며 싱크대 주변이 아수라장이어도 난 절대로 잔소리도 하지 않고 웬만하면 치우지도 않으려고 노력한다. 되도록 아들네가 정해 놓은 식사 타임에 맞추고 볼 일이 있어 시간 내에 못 오면 알아서 먹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미리 말해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외식비를 내주고 가끔씩 며느리가 잘 못하는 한국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할머니라면 껌뻑 죽는 손자를 위해 유치원비도 슬쩍 내주고 옷가지며 신발도 사 준다. 옛말 하나 틀리지 않는다고, 내 귀여움은 내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서글퍼지지 않는 한도에서.

식사 후 디저트를 먹으며 며느리는 제 친구들 이야기를 재잘재잘해댄다. 며느리 친구와 그녀들의 남편, 또 그 자녀들 이름을 몇 번씩 되뇌며 외우려고 애쓴다.

<김희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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